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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대림 3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12월 18일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들에서 구원 역사의 과정이 차분히 풀려나갑니다. 한 사람의 관대하고 선한 순종으로 풀려가는 이 순행이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어 줍니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 1,19).

약혼녀의 임신이 분명 충격이었을텐데 요셉은 격하고 파괴적인 감정에 자기를 내맡기기보다 이성과 신의를 다해 숙고합니다. 만일 마리아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면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주기로 한 겁니다. 파혼으로써 마리아가 보다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물러서 주는 것이지요. 그만큼 마리아를 사랑한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마태 1,20).

요셉의 결정은 아직 하느님의 계획을 모르는 인간으로서 최선의 지혜요 희생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천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개입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윤리, 도적적 경계를 초월합니다. 아무리 의롭고 신실한 인간이라도 하느님의 뜻은 그의 고뇌보다 심오하고 신비롭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마태 1,22).

예언서에 기록된 '동정녀 잉태와 아들의 출산'(이사 7,14 참조)이 이루어지리라는 선언인 동시에, 말씀이신 분이 육을 이루어 세상에 오시리라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의 지혜와 정의를 이 세상에 이루시리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들에서는 메시아 도래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첫째,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마태 1,21)입니다. 인류 역사 안으로 들어온 죄악은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사이를 갈라놓고 무너뜨렸습니다. 끊임없이 분화되고 확산되는 어둠의 힘이 인간의 마음을 물들이고 희망을 앗아가는 동안 인류는 점점 더 하느님에게서 멀어져만 갔지요. 오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죄를 지고 죄가 되어 죽음으로 들어가시면서 말입니다.

둘째,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세상은 하느님의 현존을 선사받습니다. 함께함. 사람들 사이에서도 힘을 솟게 해주는 단어인데,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무리 경험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느닷없이 닥치는 삶의 복병들 앞에서는 두려움과 근원적인 고독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지상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이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셋째 목적은 제1독서에서 드러납니다. 오늘 예레미야서의 대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돋아나게 하실 "새로운 싹"(예레 23,5)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 "싹"은 메시아를 가리키지요. 여리고 약한 싹이 자라나 세상에 슬기와 공정, 정의를 이룰 것입니다.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그 "새로운 싹"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 탈출은 신앙의 원체험입니다. 그들은 대대손손 그 사건을 전하고 기억하며 하느님 백성인 자기들의 정체성을 이어가지요. 그런데 오늘 예언서 저자는 그들이 더 이상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주신 하느님을 부르지 않고, 유배와 귀양살이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님께 맹세하리라고 예언합니다(예레 23,7-8). 주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시는 것은 그들 뼛속 깊이 새겨진 원체험의 중심을 이동시킬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이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예레 23,8).

메시아 도래의 셋째 목적입니다. 이집트 종살이와 유배를 거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은 곧 존재의 기반이고 안식처입니다. 그곳으로의 무사 귀환은 생명의 뿌리를 되찾아, 풍요와 번영과 안식을 누리려는 그들의 절박한 바람이 성취되는 순간이지요.

메시아, 곧 구원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고향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을 넘어서, 우리를 존재의 본향으로 데려가 안착시켜 주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나라를 열어 주시고 그리로 들어가도록 이끄실 뿐 아니라 당신 자신이 곧 길이 되어 주셨지요. 창조 이전에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누렸던 온전한 사랑의 상태가 곧 우리 그리움이 달아드는 최종 목적지요 영원한 본향입니다.

오늘의 말씀들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고, 하느님과 함께 살며, 영원한 본향에 들어가리라고 약속합니다. 이렇게 구원은 온 인류와 믿는 모든 이들에게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도 구원은 우리 각자의 실존을 파고듭니다. 각자가 '지금 여기'에서 처한 상황과 환경, 도전과 약함, 갈망과 실패 등에 따라 그리스도께 희망하는 바가 다를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나에게는 구원은 무엇일까요? 나는 구원이 어떤 얼굴로 다가오길 바라나요?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그분의 오심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내게 구원이 될 그 자리에 나의 뿌리와 소명과 완성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을 이루어 주시려고 그분이 내게 오시겠답니다. 마라나타! 어서 오십시오, 나의 주님! 나의 구원이시여! 아멘.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