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제1독서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제는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더니, 오늘은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루카 5,30) 하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시비를 거네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 일행의 행실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죄인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고 친구처럼 지낸다는 거죠. 나름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그들은 사실 '구분'의 명수입니다. 안식일과 일하는 날을 구분하고,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고, 율법을 지키는 이와 그렇지 않는 이를 구분합니다. 장소를 구분하고, 정(淨)한 것과 부정(不淨)한 것을 가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아는 율법 지식과 권한으로 이런 '구분'에 타인도 따르길 바랍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신들이 옳고, 그들 눈에 모든 세상사는 흑과 백이 명료하기 때문입니다. 구분은 분별의 지혜로 발전할 수 있어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문제는 '구분'에 그치지 않고, 한 쪽을 취하면 다른 한 쪽은 버리거나 폄하하거나 소외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특권의식과 패배주의, 대립, 단절, 괴리, 불일치를 야기합니다.
반면, 예수님은 구분하지 않고 모두 포용하는 분이십니다.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셨다면 애초에 죄인인 인간들 틈으로 들어오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레위 같은 세리를 제자로 부르실 리 없으셨겠죠. 예수님께서는 흑과 백 사이에 셀 수 없이 무수한 층위가 존재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모두를 다 아우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루카 5,29).
꽤나 성대한 잔치였나 봅니다. 세리의 집이니 동료 세리들은 당연히 왔을 테고, 평소 같으면 그들과 한 자리에 있는 것도 꺼릴 바리사이, 율법학자들까지 모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사가는 잔치 손님들을 소개할 때 "죄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라고만 했습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루카 5,31).
건강하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제시된 어느 기준 이상일 때 쓰는 말일 뿐, 결코 신체 모든 부분의 완전함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건강 상태와 병든 상태 사이에 무수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또 의인과 죄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의인으로 괜찮게 보아주는 타인의 평가는 잠시 제쳐 두고 스스로를 깊이 성찰할 때, 한 치의 죄악이나 부정 없이 완전히 의롭다고 자부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반대로 어느 한 곳도 선한 구석 없이 완전히 극악무도한 죄인이 있을까요? 의인과 죄인 사이에도 무수한 층위가 존재합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디는 건강하고 어디는 약할 수 있습니다. 또 얼마간 의인이고 얼마간 죄인이기도 합니다.
바리사이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병든 이, 죄인"을 정면으로 거론하셨지만, 단지 세리와 죄인들만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우리 모두가 병든 이고 죄인이라 당신이 필요한 존재들이라고 선언하신 것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스스로 병들었음을 의식할 때라야 의사를 찾고, 스스로 죄인임을 의식할 이라야 구원자를 찾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율법에 의해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던 이들은 공동체의 가르침과 불화하는 자신의 실존과 한계를 절감하면서 그 괴리 사이에 드리워진 외줄을 아슬아슬 타고 살아온 이들입니다. 스스로 누구보다 죄인임을 자처하며 살아온 이들이고요.
그러니 누가 건강을 되찾겠습니까? 겉 보기에 멀쩡해서 속으로 병이 난 줄도 모르고 건강에 자신있어하며 의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약하고 모자라서 병든 몸을 추스르며 의사를 찾는 사람일까요. 또 누가 구원되겠습니까? 양심과 영혼의 의로움보다 율법에 기인한 의로움으로 스스로를 의인이라 자부하는 이들일까요, 아니면 부서지고 낮추인 영, 겸손한 마음으로 또 다시 넘어질 게 뻔한 길을 돌이키고 또 돌이켜 염치불구하고 하느님 발치로 모여드는 이들일까요.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율법의 정신을 사는 진정한 태도를 알려 주십니다.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이사 58,10).
율법에 의해 소위 죄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메고 있는 멍에를 더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죄인이라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말고, 험담도 비난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지하고 살기 바빠서 율법의 어느 조항을 어겼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자상히 하느님의 가르침을 나눠 주고, 율법의 온전한 준수가 불가능한 삶 속에서도 그들이 죄책감에 짓눌려 찌부러지지 않도록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그들의 병이 나의 병이고 그들의 약함이 나의 약함임을 깨달을 때 진정 율법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과 가르침은 아무리 다른 말들로 표현되어도 '더 사랑하라'는 촉구입니다. 좀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한 이에게 더 큰 사랑의 보상이 약속됩니다. 굶주리고 고생하는 이들의 병과 약함을 돌봄으로 "내 어둠이 빛이 되고"(이사 58,10), "내 넋이 흡족해지고 내 뼈마디가 튼튼하게 될 것입니다"(이사 58,11). 그러니 진정 구원받을 이는 내가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레위뿐만 아니라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에게도 이 초대를 하신 겁니다.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는 안타깝지만 각자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죄인이신가요? 축하드립니다. 예수님이 벗님을 부르러 오셨다네요. 벗님은 영육간 건강에 문제가 있나요? 축하드립니다. 최고의 명의이신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네요. 오늘은 의인이라 자만하지 말고, 건강하다 자만하지 맙시다. 세리처럼 죄많은 인간임을 고백하고, 영육이 허한 사람임을 고백합시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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