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7.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은 매우 짧지만 성경 곳곳에 숨겨진 보화들과 연결되어 아주 풍부한 의미들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유다인들의 염려와 경계심, 두려움을 잘 아십니다. 사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지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8) 그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율법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율법 준수 여부를 통해 가늠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수한 율법을 모아,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본질로 통합시키시는데, 세세한 사항마다에 집착하는 유다인들은 그분의 이런 거시적 비전과 실행이 불편하고 두려운 것 같습니다. 여전히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서 율법을 전하고 해석해 줄 모세나 예언자가 필요한 그들은 율법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곁에 오셨지만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으로 본' 율법과 예언서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 18) 얼핏 유다인들을 안심시키는 말씀인 듯 들리지만 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가히 혁명적인 뜻이 됩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우리를 골고타의 예수님께 데려갑니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가 그분께서 모진 십자가형 끝에 숨을 거두며 하신 말씀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사랑의 극치입니다. 더 큰 사랑이 없을 만큼 가장 큰 사랑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신 그 순간이 곧 모든 것이 이루어진 순간이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이라는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와 합하여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랑의 극치인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율법은 완결되었고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최고의 계명으로 세세한 율법 조항들을 묶어 진정 자유롭게 하느님을 섬기는 길을 친히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자.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자."(마태 5,19)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수덕적 차원과 가르치고 행하고 베푸는 실천적 차원을 동시에 언급하십니다. 율법, 계명은 지키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나와 이웃에게 사랑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가치임을 알려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벗님 여러분은 법 좋아하세요? 법 좋아하는 사람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가끔은 그런 사람 보지만 대부분 비호감입니다.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들이어서 사람 냄새가 잘 안 나기 때문일 겁니다. 법은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생활 기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법 없어도, 법 몰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갑니다. 그런데 법을 잘 따지는 사람은 그 법이 굴레가 되고 있기 때문이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법을 잘 지키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킵니다. 경찰서나 감옥에 갈 일이 별로 없지요. 저도 도로교통법 외에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가끔 교통위반 법칙금이 나와서 탈이지요. 어쨌든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리고 교회법을 어기는 일도 거의 없으니 훌륭한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헌법과 육법 그리고 각종 시행령 등을 잘 아시나요? 교회법은요? 잘 모르신다구요. 그런데도 어쩜 그렇게 법을 잘 지키시나요? 사실 법을 많이 안다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법을 많이 알고 공부한 국회의원이나 판검사들이 사실 법을 제일 안 지키더라구요. 법을 잘 아니 빠져나갈 구멍도 잘 알지요.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사실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가장 훌륭한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과 다른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외국 나가서 한국 사람 만나면 반갑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 해야 하고, 북한과도 한 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해도 북한이 이기기를 응원합니다. 가장 훌륭한 가톨릭 신자는 교회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법이 몇 조로 되어 있는가 알지 못해도 어디 가서도 묵주반지를 끼고 있어도 반갑고 세례명만 들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들을 만나기만해도 그냥 좋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이 맞지요.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오늘 더 사랑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는 하늘나라의 큰 사람 되소서. 621개 조항의 율법을 지켰나 못지켰나 고민하기보다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참으로 내 몸같이 사랑했나를 돌아볼 일입니다. 벗님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법 앞에 자유로우신가요? 저는 도로교통법만 의식이 되네요. ㅎㅎ 언제나 자유로워지려나!? 급한 성격이 좀더 무뎌지면 자유로워지겠지요. 그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할까요? 이 모든 법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날을 꿈꾸는 오늘입니다.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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