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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부활팔일 축제 토요일 / 기경호 신부님 ~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마르 16,9-15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부활하신 주님의 꾸짖으심 ♣


생명의 숨결은 차가운 대지와 앙상한 나뭇가지 저 밑에서도 숨 쉬고 있었다. 그 숨결이 이제 감각의 한계 속에 눈으로 보아야 알아차리고 느끼는 우리에게 새 봄을 알리기 위해 연초록빛을 뿜어내고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이런 자연의 창조적 몸짓은 감각 저 너머의 것을 보고 알아차리며 새로워지라는 하나의 부르심인 듯싶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 한 사람에게, 이어 두 제자에게 그리고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셨으나 부활 발현을 보지 못한 자들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16,9-14). 부활의 증인들은 완고한 마음과 감각의 세계에 매여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부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시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적 믿음의 빛을 비추어 주지 않으시면 그분을 알아볼 수가 없다. 곧, 부활신앙은 예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6,14)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전에 유다인들의 적대적인 불신앙을 꾸짖을 때 사용하신 적이 있는 표현을 하고 계신다. 성경에서 마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관이며 하느님을 느끼는 안테나이다. ‘꾸짖다’라는 그리스어 동사 ‘오네이디센’은 믿음이 없는 도시 코라진과 벳사이다에 대해서도 발설되었다(마태 11,20). ‘불신’을 뜻하는 ‘아피스티아’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보인 태도(마르 6,6)와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완고한 마음’을 나타내는 ‘스클레로카르디아’라는 말은 인간이 하느님께 저항하는 타고난 성향을 가리킨다(마르 10,5). 예수님의 꾸짖음은 믿지 않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눈을 열어주고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선포하도록 준비시켜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발현하신 것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도 하셨다(16,15). 제자들을 호되게 꾸짖으시어 정신을 차리게 하시고 눈을 뜨게 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당신을 믿도록 이끄신다.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도록 불리었고, 그 소명을 수행함으로 인해 그들의 부활 신앙이 더욱 확고해진 것이다. 이렇듯 신앙은 반드시 행동으로 표현될 때 참신앙임이 드러난다. 믿음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받아들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결단이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안에서 차별 없는 형제가 되도록 사랑으로 행동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 따르겠다고 약속한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독선과 고정관념, 완고함을 드러낼 때가 있다. 이런 마음들이 부활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임을 잘 알지 않는가! 오늘도 나를 향해 사랑으로 꾸짖으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 모두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또한 사람에게 복종하기보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예수님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의회 지도자들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거부한 사도들의 태도를 깊이 새겨 주님을 선포하자. 우리에겐 어정쩡한 중간지대나 그럴싸하게 넘어가기 위한 양비론은 존재할 수 없다. 생명과 정의와 진리와 사랑의 행동이야말로 그 어떤 반대나 거짓도 부끄럽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되새길 일이다. 완고함과 불신의 안경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호흡하는 부활 여행을 시작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