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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부활 제 4주간 수요일 / 기경호 신부님 ~

부활 4주 수요일/ 요한 12,44-50


복음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5)
 

 말씀을 들어 바라보는 사랑의 눈길 ♣

요즈음처럼 바쁜 세상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것은 드물고 어렵다. 어쩌다 머리 모양이 바뀐다든가, 색다른 화장품을 쓴다든가, 옷차림이 바뀐 경우가 아니라면 얼굴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헤아리지를 못한다.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이 멀어져 자신에게로만 가까이 가서 머물러버리는 생활이 되어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면 굳어 있고 어두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웃을만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도 미소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기쁨을 주는 밝은 얼굴의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왜 그럴까? 그 누구도 불행하고 슬프게 살고 싶지는 않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어둠 속에 자신을 맡겨버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밝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복음이 그에 대한 열쇠를 준다. 곧 살아가는 모습이 어두운 까닭은 하느님을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44-45절) 예수님께서 믿음을 말씀하시면서 ‘보는 것’을 다시 거듭 언급하시는 까닭은 당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시다.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는 것이 이를 암시해 준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46절)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나의 영혼 상태를 반영하는 얼굴이 어둡고 굳어지는 까닭은 마음의 어둠 때문인데, 이 어둠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듣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소리와 기준을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방식, 불평불만, 부정적인 사고방식, 냉소적인 태도, 완고한 마음으로 꽉 차 있는 마음자리에는 말씀은 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이는 빈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의 약함과 죄스런 모습과 가난한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여전히 서성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마음에서부터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을 말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일을 하시도록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우리의 완고한 마음, 닫힌 마음 때문에 실직해버리신 예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이제 그분의 말씀이 나의 삶을 마음대로 다루도록 맡김으로써 영혼의 어두움은 차츰 걷히게 될 것이다. 말씀에 내 자신을 맡기지 않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 단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저 듣기만 하고 내맡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분과 눈길을 맞추고 그분을 느끼고 이끌어주시는 대로 손발을 움직이는 바로 이것이 신앙이다.

이렇게 우리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얼굴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교 성소는 ‘기쁨’이다. 나의 생각, 사고방식, 기준을 버리고 말씀을 마음으로 들으며 말씀에 자신을 맡기고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임으로써 어둠의 그늘을 벗어나도록 하자.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사랑이요 빛이신 하느님을 바라보고 서로의 얼굴을 사랑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이제는 그간의 속사정, 속마음은 헤아려보지 않고, 내가 죽어 마음으로 경청하는 사랑 없이 겉치레 인사로 ‘얼굴 좋아졌다’고 말하지 말자. 말씀을 듣고 되새겨 그 애정 깊은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