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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 연중 제 15주간 화요일 - 불행으로부터 회개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았기에 코라진이 불행하다고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저는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불행하여라, 너 김찬선 레오나르도야!’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 생각에 불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행복한 줄 모르는 불행과,

불행한 줄 모르는 불행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줄 모르는 것이 왜 불행이고,

불행한 줄 모르는 것은 또 왜 불행합니까?

 

행복한 줄 모르는 것이 불행이라는 것은 사실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한 줄 모르는 것은 행복할 줄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행복할 줄 모르기에 행복한 줄 모르는 것입니다.

 

행복할 줄 아는 것은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행복으로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다른 행복과 큰 행복을 욕심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할 줄 앎으로써 행복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이 세상에서 행복한 것은 이런 식으로 행복하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불행한 줄 모르는 불행에서 회개함으로써

참으로 행복할 줄 알라고 하십니다.

 

사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는 다 우리의 참 행복을 위한 것이고,

우리가 불행으로부터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이며

그래서 사랑의 호소이지 불행해지라는 저주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불행한 줄 알면 불행으로부터 회개할 겁니다.

그런데 불행한 줄 모르기에 계속 불행하게 삽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내가 왜 불행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앞서 얘기한 것이고 그래서 다시 얘기하는 것이지만

지금 이 세상의 행복에 만족하기에 불행한 것입니다.

 

더 풀이하면 이 세상의 행복에 만족하고 안주하기에

저세상의 행복을 살려고 하지 않아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부터 행복하고

저세상에서도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럴 수는 없을까요?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얘기입니까?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부터 소유하면 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 선언입니다.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가 그것 아닙니까?

 

영 안에서 가난하면 이미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에

지금 여기서부터 곧 이 세상에서부터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부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만 행복하면

그것이 진짜 불행이고 이 불행으로부터 회개하라고

오늘 주님께서 불행 선언의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불행 선언에서 오히려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오늘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