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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27주간 토요일 / 정인준 신부님 ~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제1독서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3,22-29
형제 여러분,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우리들에게 익숙한 세계의 위인들 에디슨, 아안슈타인, 안데르센, 베토벤,
그리고 빌게이츠, 우리나라의 이순신, 김구, 안창호, ……

이 사람들의 전기를 읽다 보면 공통적인 것은 어머니의 교육과 격려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들은 위대한 교육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무 바빠 당신 사랑을 날라 줄 어머니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인은 연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성모님에 대한 찬양의 말한 사실을 루카는 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11,27)

여기에 대해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28절)

얼핏 보면 성모님은 행복한 분도 복된 분도 아니라는 어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겸손이 배어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채게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특히 성모님과 여인들에 대해서 마태오나 마르코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자세히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외친 여자는 이름도 없고 그녀에 관한 어떤 설명도 없지만
예수님의 모친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만큼 크시다는 설명도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복음 선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적인 것에 매이실 분이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며 복음정신대로 사는 사람이 사실 큰 사람이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외친 여인의 말처럼 성모님은 행복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시기 때문에
그 어머니도 훌륭한 것은 사람들에게 칭송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신 분시기에 당신 어머니를 추겨 세운다고 해서 맞장구를
치실 분은 더더군다나 아니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식구들을 낮추는 것이 예의라고 여긴 우리의 풍토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장가 간 아들과 시집 온 며느리를 머슴에게 붙이는 ‘아범’ 또는 ‘어멈’으로
불렀습니다. 나라의 임금까지도 자기 자신을 신하들 앞에서 ‘과인’이라고 하며
낮추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참된 행복은 복음을 실천하며 기쁨에 차 있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족은 이 세상의 것, 성장하고 보호하는 데에서 있지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와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족이라는 틀에, 특히 자식들의 몫까지 세상 마칠 때까지
끌고 가며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재물을 끌어 모으느라, 명예를 더 얻으랴,
그리고 자기 얼굴 내미느라 많은 시간과 정성을 쓸어 붓습니다.

신앙인들마저 이 틀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이 세상의
행복을 ‘복음실천’에 두셨습니다.

여기에는 두려움도 욕심도 없는 평화와 기쁨의 하느님 나라의 모습이 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구약을 지배해온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구원으로 보고 그런 경지는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자유인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이런 가르침에 귀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