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이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47-52).” 1)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겉으로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아니고, 옛날에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장식하면서 그 예언자들을 존경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있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도 너희 조상들과 다를 것이 없다.”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지혜’ 라는 말은 ‘지혜로우신 하느님’이라는 뜻이고, 사실상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이 받은 박해와 예언자들의 죽음을 예언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받은 박해와 예언자들의 죽음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고, 알고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살인자들에게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을 인용한 말씀이 아닙니다. 학자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 자신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언자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하느님께서 처벌하실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라는 말씀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동시에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인 일은, 그들을 파견하신 하느님께 반역한 큰 죄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2) 박해받고 죽으라고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려고 예언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인데,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회개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예언자들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박해하고 죽이는 자들은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에 “왜 하느님께서는 곧바로 처벌하지 않으실까?” 라고 묻는다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2베드 3,9). 3)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옛날의 일’만은 아니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일입니다. 옛날에 죽은 예언자들과 순교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성지를 조성하고, 현양 사업을 하는 것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양 사업으로만 그치고 오늘날의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위선자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정말로 예언자들과 순교자들을 현양하려면, ‘말씀’을 잘 새겨듣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삶이 따르지 않으면 성지 조성 사업이나 현양 사업들은 모두 바벨탑을 쌓는 일이 될 뿐입니다. <대중 매체의 발달 덕분에,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방식과 경로로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회개하라는 말은 듣기 싫어하고, 복을 받는 방법에 대한 강의만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박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직접 박해하지는 않더라도, 그 ‘말씀’ 자체를 박해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받게 될 박해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2-3).”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인 자들이, 또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자들이 오늘날에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일이 오늘날에도 흔히 있습니다.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을 회개시켜서 바로잡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 볼 때에는 신앙인들끼리 서로 “내가 옳다.”고 다투는 모습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진짜로 옳은 쪽이 어느 쪽인지,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첫 번째 기준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요한 13,34-35). 사랑 없이 미움과 증오심으로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틀림없이 잘못된 신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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