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 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참 평화로 이끄는 불꽃>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 12,49)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엉뚱하게도 세상에 '불'을 지르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파괴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죄를 불살라 태워버리는 십자가의 세례를 통해 이루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교회 안이나 밖이나, 이 ‘불’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가진 기득권으로 빛을 짓누르고 공격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어둠이 들통나는 것을 막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의와 거짓은 물러가기보다 오히려 불을 꺼버리려 온갖 술수를 부리기 일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루카 12,50) 사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의 세례’로 지상에서의 전도 활동을 완성하시고, 성령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타올라야 할 이 ‘성령의 불’과 ‘피의 세례’는 하나의 큰 도전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들이나 딸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결코 갈 수 없는 도전입니다. 그것은 거짓된 자신과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 불의와 거짓을 맞서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 그런데 친히 ‘평화’를 주신 분(루카 24,36)이 어찌하여 분열을 일으키실까? 그것은 세상이 거짓 평화에 물들어 있고, 그 속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분열’은 파괴를 위한 분열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분열이요, 어둠으로부터 오는 분열이 아니라 빛으로부터 오는 분열입니다. 그렇습니다. 분열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열 안에서 빛과 어둠을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위를 감돌고 있었다.” (창세 1,2) 그렇습니다. 분열이 없는 것이 평화인 것이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진 것이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왕’이신 당신께서는 오늘도 '말씀의 쌍날칼'을 주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속셈과 생각을 갈라냅니다.” (히브 4,12)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은보석의 선물더미가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말씀의 칼’은 우리를 갈라놓고 분열시킵니다. 오늘도 ‘말씀의 불세례’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분열시킵니다. 다름 아닌,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키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참 평화로 이끄는 이 불꽃이 우리 안에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 12,49) 주님! 당신은 제게 사랑의 불을 지르십니다. 제 속의 어둠을 태워 새로운 살이 돋게 하시고, 이기심을 태우고 자비가 돋게 하소서. 무관심을 태우고 사랑이 돋게 하시고, 사랑의 분열을 일으키소서. 제 살을 가르고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소서. 제 안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당신 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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