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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29주간 목요일 / 정인준 신부님 ~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 복음은 우리에게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어떻게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실까요?

주님의 삶을 둘러보면 평화롭거나 쉬었던 일은 없고 사람들로부터
반대를 받으셨던 힘겨운 나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당신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 길은 순탄하거나 영광의 길은 아니었고 집도 없는 뜨내기 삶이셨습니다.

주님의 삶을 들여다 보면 혈육으로 맺어준 가족에게서 떠나는 삶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보통 사람의 삶을 사셨다면 고향에서 가족들과 오손 도손 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다운 고향에서 혈육으로 부모인 요셉의 직업을 대물림하시면서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셨을 것이지요.

물론 복음서는 주님께서 나자렛에서 어떻게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떻게 성장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설명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드러나지 않았어도 부모에게 순명하신 주님께서는 가족이나 이웃을 힘들게
하시지는 않았으리라 추측합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표현 중에 오늘 말씀은 강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49-51)

주님의 길을 좀 더 가까이 보면 나자렛에서 사신 삶 외에는 가족을 떠나신 삶이셨습니다.

제자들과 공생활을 하시면서 가족과의 연결에서 자유로우신 삶을 사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로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강하고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소명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분열도 혼란도 싫어합니다.

그저 안일무사하고 평화의 시간을 갖기를 내심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의 앞 날이 결코 평탄하지 않고 박해의 연속일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도 그렇게 평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얽어매는 것은 혈육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가족을 떠난 것처럼 이제는
인간이 가장 약하고 걸려 넘어질 것 같은 혈육을 뛰어 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혈육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말이 쉽지 가족을 떠난다는 것, 서로 가치관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뛰어 넘기가 사실 너무 힘겨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서로 갈라지는 가족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52-53절)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준엄한 일입니다. 인간적인 정이나 관계를 놓고 적당히
넘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사실 중요한 가족 관계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적대와 분열의 관계로 이끌어 가시려고 합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부정도 그렇고 어떤 계획이 좌절되는 것 중에
대부분 가족이나 혈연에 막히는 일을 자주 봅니다.

다시 말하면 가족은 그 만큼 동서고금을 통해서 보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며
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른 제자에게 아버지 장례도 허락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인간적 관계나 어떤 이익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소극적이거나 평온의 길 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역동적이고
과감한 도전의 끝과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오는 것입니다.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