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금요일 강론>(2024. 11. 22. 금)(루카 19,45-48)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45-48
그때에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지금 이 시대는 분명히 ‘위기의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루카 19,45-48).”
1) 온 백성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를 백성들이 지지했음을 나타냅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서민들에게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장사꾼들에게 자릿세를 받은
사제들은 사실은 한통속이었습니다.
<어쩌면 사제들이 장사꾼들을 고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짐승이나, 여러 가지 물품들을
다른 곳에서는 사지 못하게 하고, 성전에서만 사라고
강요하면서, 아주 비싼 값으로 그것들을 팔았는데,
그것은 서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이었고,
‘강도짓’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라고
꾸짖으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백성들이 예수님의 성전 정화를 지지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성전 정화를 지지했다고 해서 백성들이 예수님을
지지한 것은 아니고, 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른 것도 아니지만, 어떻든 기득권층 사람들에게는
백성들이 성전 정화를 지지하면서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은 크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2)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당시 ‘최고의회 의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게 말하면 서민이 아니었던 사람들,
즉 기득권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기존의 종교 질서와 사회 질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자기들의 기득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느님의 일’이고
‘선한 일’인데,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그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과 기득권층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느님의 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선한 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예수님의 비판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는 말씀을
듣고서 자기들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는 예수라는 자가 성전을 모독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성전을 모독한 것은 그자들인데,
그자들은 반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3)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2-3).”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
자기들은 하느님 편에 서 있고, 예수님은 반대편에
서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은 곧 하느님께 충성하고
봉사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어쩌다가 선과 악을 판단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탐욕’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위선자가 되었을까?
4) 이천 년 전의 유대교와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긴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은(신앙생활은) 어떤가?”입니다.
중세 때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타락했었고, 더 큰 죄들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만일에 그때 훌륭한 성인 성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교회는 아마도 그대로 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우리 교회에게는
분명히 여러 가지 이유로 ‘위기의 시대’입니다.
통계표를 보지 않아도, 성소자 수가 줄어들고,
새 영세자 수도 줄어들고, 냉담자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그만큼
‘복음화의 힘’은 약해지고 ‘세속화의 힘’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심각하게 타락했을 때
성인 성녀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쇄신하고 개혁하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무너지는 교회를 다시 세운 것은,
분명히 ‘성령의 도우심과 보호’입니다.
주님께서는 변함없이 성령을 통해서 교회와 신앙인들을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성실하게 응답하고 회개하는 생활을
할 때에만 그 보호와 도우심이 ‘살아 있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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