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제1독서 <그들의 이마에는 그리스도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4ㄴ-5 나 요한이 1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던 화폐들은 좀 복잡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유대인들의 화폐는 세켈, 미나, 탈렌트가 있고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화폐는 데나리온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과부가 낸 두 렙턴은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하던 화폐입니다. 한 렙턴은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충 약 70센트 정도로 두 렙톤이라고 하면 1불 40센트 정도가 되겠지요. 당시 사용하던 화폐 중에 제일 적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빈곤한 한 과부의 두 렙톤 헌금에 대한 주님의 칭찬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주랑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있었는데 그 모습은 윗 부분은 좁고 아랫부분은 넓어서 마치 나팔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13개의 헌금함 중에 하나가 있는 곳에서 부자들이 보라는 듯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성전에 비치된 헌금함은 여러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모양새가 같은 헌금함이지만 내용은 서로 달라 과거에 내지 못했던 밀린 성전 세, 또 현재의 성전 세, 성전에 바치는 일반적 제물, 또는 고유 지향의 제물, 속제제물 등으로 구분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 내용을 세분하지 않고 그냥 일반적인 의미인 ‘헌금함’이라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봉헌함에 넣는 것은 적은 양보다 큰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요. 예수님께서 작은 두 렙톤을 바치는 과부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적은 것이라도 정성껏 바치는 모습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보통 가치가 있는 것을 봉헌하는 정성으로 따지지요. 그런데 화폐단위로 가장 작은 지금의 ‘센트’와 거의 맞먹는 렙톤의 두 닢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년의 ‘전 재산’이라는 데에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오히려 정성보다는 돈의 가치를 따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단 유대인들 뿐이 겠어요? 자본주의에 깊숙이 몸 배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돈의 가치가 인간의 진실이나 정성보다는 앞서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주 작은 두 렙톤의 돈을 놓고 세상의 판단으로는 ‘그것은 봉헌도 아니다.’고 할 정도인 것입니다. 오늘 과부의 봉헌에 대한 주님의 칭찬 중에 그 여인의 ‘구차한 중’이라는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 생존해 있을 때에 가톨릭 부인회와 가졌던 대화가 소개 된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은 그곳 사람들에게 인도의 캘커터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남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기에도 부족한 중에서 나누는 정성이 더 가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산적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현실에서 어떻게 내 앞에서 손을 벌리는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을까요? 내가 속상하고 힘겨울 때 내 이웃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성숙된 신앙인일까요? 구차한 속에서 복음의 정신대로 감사하고 정성을 다해 봉헌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체험하고 복음 정신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성숙된 신앙인이 되겠지요.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봉헌하는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오늘 하루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멋진 하루를 맞으세요. 비록 부족하고 결점 투성이고 자랑할 것도 없는 자신이지만 렙톤 두 닢을 칭찬하시며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이 정성을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정인준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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