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잠을 깨니 비가 오고 있습니다.
잠결에도 뭔가 뒤숭숭했는데 비까지 오면서
강론 올리기 위해 늘 하던 묵상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어제저녁도 기도하는데 눈으론 기도하지만, 마음은 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 같이 사는 형제와 간단히 한잔하며 이 얘기 저 얘기하는데
얘기도 건성이었고 한 마디로 얘기에도 형제에게도 진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의 제 상태는 이런 저의 연장이었지요.
그래서 오늘 강론이고 뭐고 다 접어두고
감실 없는 경당에 앉아 저를 성찰하니 이유가 나왔습니다.
요 근자에 크고 작은 많은 일과 많은 만남이 있었고,
그러는 가운데 크고 작은 저의 걱정과 사람들의 걱정이,
‘잔걱정’, ‘잔근심’, ‘잔두려움’으로 제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이며,
이것들이 하느님 앞에 있어도 하느님 만나는 것을 방해하고,
형제와 얘기하면서도 형제에게 진실하지 못하게 한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반성이 되었습니다.
유리창에 잔 먼지가 많이 쌓여도 잘 보이지 않듯이
제 마음의 창에도 잔걱정과 잔 두려움이 많이 쌓여
하느님도 형제도 잘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진실하지 못했던 겁니다.
크고 짙은 먼지가 유리창에 있었으면 즉각 알아채고 닦아내지만
너무 잔 먼지가 많이 쌓이면 알아채지 못하여 닦아내지 않는 것처럼
제 마음의 유리창 먼지들도 잘아서 잘 알아채지 못하고 닦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제 마음의 저 밑바닥에 잔걱정, 근심,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저의 하느님,
올해 날씨의 하느님은 저를 돕지 않으십니다.
바자회 때도 비 오고,
봉사자 소풍 때도 비 오고,
내일과 모레 김장 때도 비가 온다니 그렇지 않습니까?
전엔 하는 일마다 도와주셔서 작은 기적들을 많이 체험케 해주셨는데
올핸 하는 일마다 왠지 도와주시지 않아 잔걱정 근심에 싸이게 된 것인데
오늘 아침 묵상을 통하여 저 밑바닥에 있는 그 이유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 말씀이 제게 들렸습니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환난이 일어났을 때 속이는 자들 뒤를 따라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제게는 그까짓 잔걱정이나 근심을 쫓아가지도 그것들에 쫓기지 말라고 하시고,
잔 두려움들이기에 막연한 그런 두려움들에
네 마음 뺏기지 말고 하느님 놓치지 말라고 하시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잔걱정과 막연한 두려움들에 마음을 뺏기고 하느님도 놓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뺏는 잔 것들 알아채고,
그런 것들 가운데서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느님께 더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은 오늘 복음의 본 묵상보다
이런 하릴없는 묵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양해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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