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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4주간 목요일 / 이영근 신부님 ~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우리는 지금 <전례시기>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표징들을 듣습니다. 곧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표징들입니다. 이는 ‘종말’, 곧 ‘구원’은 올 것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때에 그 어떤 시련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이는 ‘종말’ 그날이 우주의 파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곧 그날의 대재앙은 단순히 미래를 앗아가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를 “속량”하신다는 것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의 종말은 집단적 죽음이나 멸망, 결별이 아니라, 하나의 변형이 될 것입니다. 곧 인간의 종말은 분열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탄생이 될 것입니다. 곧 대재앙이 아니라, 정신적 역전이 될 것입니다. 정신은 역전하고 다른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며, 세계는 순간적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의 희열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말론적인 표현들을 미래의 세상 종말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종말론적인 표징들은 우주론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신학적인 표현으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먼 미래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셨고,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성의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분을 맞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웬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가 아니라 그 비참함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삶 안에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질 때, 그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때”에 결정적으로는 드러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주님!

새롭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하소서.

변형되게 하소서. 당신의 속량을 입게 하소서.

제 삶이 역전되고 당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