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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 오상선 신부님 ~

11월 30일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2024년 나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침 성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파견과 선포로 이어지는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오늘 복음의 부르심 기사는 참 담백합니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간결한 언어로 이어집니다. 부르시는 분이나 부르심 받는 이들의 심리 묘사도 부연 설명도 없이 착착 진행됩니다. 너무 간결해 건조해 보이지만 덕분에 모호함 없이 명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시다가"(마태 4,18).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혼자셨네요. 오늘은 특히 호숫가를 지나시는 예수님이 "홀로"이셨음이 눈에, 그리고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그분은 세례를 받고 성령에 이끌려 들어간 광야에서 목숨을 건 단식 여정을 거치신 뒤 갈릴래아에서 전도를 시작하셨지요. 그렇게 얼마간 그분은 혼자셨을 겁니다.

성 삼위 하느님과 일치 안에 계시는 그분께는 홀로이심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비록 인성을 입으셨으나 홀로 충만하고 완전하신 분이니까요. 하지만 그 충만한 사랑을 나누고,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널리 선포하기 위해서 함께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바로 오늘이 그 역사적 순간이지요.

"그들은 어부였다"(마태 4,18).

예수님께서 어망을 던지고 있는 두 사람을 보십니다. 어부들입니다. 다른 이들, 좀 더 학식 있는 세도가의 전도 유망한 젊은이를 원하셨다면 성전이나 회당 근처에 가셨겠지요.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현장에서 땀흘려 노동하며 일상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특별할 것 없이 일상 안에 움직이는 우리를 "보시고"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예수님은 상대방의 일상성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인정하고 존중하십니다. 어부들에게 '힘들게 그러고 살지 말고 다른 일을 하자'고 꾀시는 게 아니라, 어부로서의 자질과 경험을 살려 진짜 어부로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신 겁니다.

언젠가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낚시는 운에 달렸는지 기술에 달렸는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내심, '물고기가 와야 미끼를 무는 거니까 순전히 운에 달린 게 아닐까' 선입견을 가지고 물은 건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운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기술이라고요. 다가감, 집중력, 인내,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알아차리는 섬세함과 민감함, 최적의 순간을 포착해 낚아챔, 밀고 당김, 힘 조절...

어부의 일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모든 일과 노동에는 나름대로의 영성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면 일상이 새롭고 경이로운 영성의 장이 되고, 간과하고 무시하면 지루하고 피곤한 소모적 일터일 뿐이겠지요.

"그물, 배, 아버지"(마태 4,20.22).

부르심을 받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곧바로" 버린 목록입니다. "그물"은 생계 유지의 직접적 도구이고, "배"는 그보다 좀 더 규모 있고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운송 수단도 되는데 둘 다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자기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자산들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혈연으로 묶인 일차적 가족관계입니다.

이 모두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세상 원리와 혈연에 집착하는 삶을 초월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지상 원리에 자신을 묶기보다 천상 원리에 속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고요. 당시 한창 노동 중이던 그들이 그 순간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소홀히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해방자 메시아의 출현과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열망하고 꿈꾸면서 일상에 충실히 몸담고 있던 중이었을 겁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교회의 본질인 선교 사명의 원리를 들려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먼저 말씀이 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하느님의 뜻을 말씀과 행동으로 전하십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듣는 이의 귀뿐만 아니라 마음도 울립니다. 가르침과 기적뿐 아니라, 그분의 수난과 죽음까지도 선포의 일환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이 선포를 들은 이는 믿게 됩니다. 말씀이신 성자와 그분이 이루신 하느님 나라를 믿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친히 희생되신 구원자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아들인 말씀이 목 끝까지 차올라 이를 선포하러 달려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 존재로 들은 말씀이 그의 심장에서 타오르기 때문에 그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그의 믿음과 고백이 울려퍼지면, 들은 누군가의 귀와 마음에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가 충실히 채워오던 일상의 자리에서 그 선포를 껴안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믿음을 고백하러 또 달려나갈 것입니다. 이렇듯 구원의 고리는 파견과 선포와 믿음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일상을 채워가는 가운데 믿고 듣고 파견되고 고백합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세례와 함께 성령의 인장을 받은 우리는 존재 전체로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정체성과 실존을 무시하지 않고 함께 끌어안으셨기에, 우리는 온 존재로 주님께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우리의 선포는 온 존재로 이루어집니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화답송).

그러니 말주변이 없다고 숫기가 없다고 움츠러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입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빛, 미소, 손짓, 말투, 움직임, 관심, 기도, 눈물과 한숨에서도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맞아 주님의 충실한 제자이고 사도인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지난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