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신학생 때 ‘Alter Christus’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그냥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범을 따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돈, 돈, 돈’ 하는 것이 예수님 시선일까요? 내게 잘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골탕 먹이려는 것이 예수님 시선일까요? 기도는 전혀 하지 않고 세상일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어떨까요?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시선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향해 측은하게 바라보시던 모습, 자기 적대자를 향해서도 저주보다 사랑으로 감싸안으려고 했던 모습,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뜨거운 사랑의 시선을 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는 세상 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긴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상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억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감사 기도를 바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세상 안에서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인정 속에서 자기를 돋보이려고만 노력합니다. 이들은 자기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뽐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뜻인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시선을 볼 수가 없었고, 주님을 알지 못해서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철부지들 같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세상의 관점으로 철부지 같은 사람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귀영화보다 주님 사랑을 더 강조했고 실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있겠어?’라면서 철부지 취급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철부지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안에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기쁘게 주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과거의 탓,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인생은 호전한다(웨인 다이어).
사진설명: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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