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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조명연 신부님 ~

2025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25년 을사년 (乙巳年)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지난 2024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연말에 찾아온 많은 아픔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났는지….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해지시길 기도합니다.

 

여행 등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복잡한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정말 그럴까 싶었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오신 분과 성지순례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하셨으니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분 덕택(?)에 너무 힘든 순례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싫은 것이 많은지, 그리고 자기 다녀온 경험과 계속해서 비교하시는지,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행 안에서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주의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의 경험 통로는 책과 사람들과의 대화뿐이었습니다. 여기에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구와 가르치는 데 몰두했습니다. 여행 등의 경험이 전혀 없지만, 그는 엄청난 철학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경험의 객관적 형태보다 자기가 마주한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더라도 해석하는 힘이 없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해석은 우리 신앙 안에서 묵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안에서 분명 깊이 있는 깨우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아 주신 어머니를 기리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구세주의 어머니시지만, 앞에서 먼저 말씀하시지도 또 행동하시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지만, 특별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또 예수님을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도 보여주셨던 모습입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서, 하느님의 뜻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 즉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으로써는 절대로 하느님의 뜻을 알 수도 따를 수도 없게 됩니다.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을 따르면서 하느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4년과는 다른, 보다 의미 있는 2025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타인이 내게 내어주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한 선물이다. 지금은 나미브 사막의 폭풍우처럼 희소해졌지만 누군가에게 한 시간 혹은 하루 동안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사진설명: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 ‘성모 대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