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마르 2,9)
1월 17일 금요일 (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4,1-5.11
형제 여러분, 1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빛과 그림자를 안고 돌아가는 길
오늘은 중풍병자의 움직임과 예수님의 관계를 중심으로 묵상해봅니다. 잘 알다시피 중풍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서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의식이 흐릿해지기도 하며, 발병하면 대부분 완치가 어렵고 후유증이 남아 고통스런 질병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모인 이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2,2),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그분께 데려갑니다(2,3).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간 것을 보면 중풍이 상당히 깊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집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한 채 고통과 절망 속에 누어 지냈을 것입니다. 돌보는 가족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는 예수님께 치유, 구마(驅魔), 죄 사함, 민족 해방, 현세 복락 등을 기대하고 찾아간 이들과 달리 사람들의 도움으로 ‘절망의 이불’과 ‘고통의 집’에서 빠져나옵니다. 자신의 뜻이었는지 권유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예수님 때문에' 집을 떠난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자신이 머물던 집을 떠나 주님께로 옮겨진 것은 어둠에서 빛을, 죽음에서 생명을 찾아가는 ‘생명의 순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몸과 마음이 아프고 외롭고 힘들 때, 세상 불의와 구조적 악이 판칠 때 포기하고 체념하며 손놓고 집안에 있을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일수록 주님을 찾아 나서야 하고, 그런 상태에 있는 이들을 주님께 데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2,5) 하시며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집을 떠나온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 생명력을 되찾고 절망을 떠나 희망을 만났으며, 어둠을 떠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들 때, 권력과 자본의 폐해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을 때 연대하여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면서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2,11)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매우 깊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일어나라’고 하시며 병들어 굳어진 그의 몸과 영혼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십니다. 그 결과 창조가 일어나고 관계가 발생하며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들것을 들고’ 가라 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들것은 아픈 몸을 눕히고 기댄 고통의 자리이자 떨쳐버리고 싶은 과거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생명을 되찾도록 예수님께 데려다준 ‘하느님의 성사’이며 자신의 고통과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담긴 선물입니다. 우리도 내 삶의 들것 곧, 좋은 것뿐 아니라 아픔과 상처, 고통과 어둠도 끌어안고 하느님과 세상 사이를 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냥 ‘가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집은 고통스럽게 지냈던 그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원점이요 가족들의 걱정과 슬픔이 서린 곳입니다. 성해진 그가 돌아감으로써 가족들은 걱정과 시름을 놓고 활기를 되찾았을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되돌아감은 병이 치유된 사람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렇게 가정이나 수도공동체, 사회도 예수님을 품어야 화해와 쇄신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요, 우리가 그분을 찾아 떠나고 그분과 함께 집으로 되돌아가는 순례를 계속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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