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두 가지 덕목, 희망과 믿음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하느님과 더욱 깊이 연결되게 합니다. 희망은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기다리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절망에서 구해내며,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합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사람이 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희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이는 단순한 낙관적 태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을 향한 확신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실 구원의 계획을 믿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이정표와 비슷합니다. 희망은 목표와 비슷합니다. 저의 희망은 교사나 군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제가 되었지만, 저의 희망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제의를 입습니다.
믿음은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서에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믿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와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믿음을 통해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으며 희망을 품었습니다. 믿음은 미래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지금 이루어지는 겁니다. 믿음은 희망이라는 이정표를 따라서 대상을 향해 나가는 겁니다. 믿음은 다분히 인격적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믿고, 자녀를 믿습니다. 37년 전입니다. 저는 약속 시간을 깜빡 잊고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저를 믿어 주었던 친구는 어두운 다방 구석에서 저를 6시간씩 기다려 주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도착하니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올 줄 알았어요!’ 저를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기다려 주었습니다.
희망과 믿음은 서로 다르지만, 깊은 조화를 이룹니다. 희망은 미래를 향한 기대이며, 믿음은 지금 우리가 하느님께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주고, 믿음은 그 길을 걷게 하는 힘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 그분은 희망과 믿음의 완전한 조화를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믿으며, 부활의 희망을 품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우리가 희망과 믿음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완벽한 모범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희망과 믿음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통과 시련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계신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단순히 기도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사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연대하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 믿음의 실천입니다.
희망과 믿음은 우리 신앙의 두 기둥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하고, 믿음은 우리가 그 구원 안에 살아가게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우리는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희망과 믿음은 사랑의 두 날개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품고 믿음을 실천하며 하늘나라를 향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희망과 믿음의 은총을 간구하며, 우리의 삶을 그분께 온전히 봉헌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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