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레위인들은 율법서를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 느헤미야기의 말씀입니다.8,2-4ㄱ.5-6.8-10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8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12-30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4; 4,14-2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02년 사목국에서 일할 때입니다. 사목국에는 여러 부서가 있었습니다. ‘선교 전례, 교육, 가정, 복음화, 직장, 레지오, 기획 행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교구의 사목국에서 일하였지만, 정확하게 우리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사목국장 신부님과 2박 3일 연수를 가면서 우리는 부서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각 부서를 사람의 몸과 비교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기획 행정은 머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교구의 사목이 어떤 방향이었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교육 담당이었습니다. 저는 교육은 심장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장이 신선한 ‘피’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공급할 때, 교구와 본당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레지오는 발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선교 전례는 뼈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뼈가 있어서 균형을 잡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가정과 선교 전례는 교회를 지탱하는 뼈와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화는 눈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음화를 통해서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박 3일 동안 연수를 통해서 각 부서의 역할과 기능을 고민했고, 우리는 교구 사목국이라는 몸의 지체로 기쁘게 일하였습니다.
2025년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을 ‘자동차’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사제는 ‘핸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구장으로부터 권한과 책무를 받은 사제는 교회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먼지와 빗물을 닦아내는 ‘와이퍼’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자는 가난, 정결, 순종의 와이퍼로 교회의 유리에 붙어있는 권위, 욕망, 시기의 먼지를 닦아내기 때문입니다.
사목회는 ‘엔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목회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재정평의회는 ‘기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듯이, 재정평의회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은 ‘의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새로 온 신자들에게 구역과 반을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신심 단체는 ‘바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심 단체의 카리스마와 영성으로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쉬는 분들과 아픈 분들은 트렁크 아래 있는 ‘스페어타이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본당에서 잘 볼 수는 없지만 그분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퀴에 문제가 생기면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듯이, 쉬는 분들과 아픈 분들이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공동체에서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당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을 ‘몸과 지체’로 설명하곤 합니다. 우리의 몸은 인격과 정신이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몸은 많은 지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체들이 원활한 활동을 하도록 산소, 영양분, 물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은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느끼고, 만지고, 걸을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통합된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발, 예수님의 손, 예수님의 입, 예수님의 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받아야 할 영양분은 예수님의 말씀, 삶, 표징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다운 통찰입니다.
중국의 한 대나무는 심으면 7년 동안은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8년째 되면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7년의 세월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7년의 세월은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준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준비는 소홀하게 됩니다. ‘건강, 가족들의 사랑, 친절, 자선’과 같은 것들의 성과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정말 필요한 것들입니다.
균형 잡힌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말해주고 있고, 그런 균형 잡힌 삶은 말씀에 충실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읽으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해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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