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강론>(2025. 1. 29. 수)(루카 12,35-40)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신앙인에게 ‘복’이란,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입니다.』 1) 신앙인에게 ‘복’이란,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입니다. 은총을 은총으로 알아보는 것이 ‘신앙인의 지혜’입니다. 반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은총을 안 주신다고 불평하기만 하고 원망하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떻든 하느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 그런데 하느님께서 주신다고 해서 그 은총이 자동적으로 나의 것이 될까? 은총은 받기를 원하고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받는 법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받으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답게 살면서 ‘선’과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려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은총을 잘 받는 방법입니다. 2) 쓸데없는 것들과 허무한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해도 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희망’인지, 그냥 나의 욕심과 집착일 뿐인지도 잘 반성해야 합니다. 욕심을 희망으로 착각하고, 자기 혼자만의 뜻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우기고, 은총을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그것은 모두 어리석은 일입니다. 3) 신앙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은 뒤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욥 1,21).” 하느님께서 주셨다가 하느님께서 가져가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소유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없어진 다음에는 그것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7-10).” <여기서 ‘돈’을 ‘권력’으로 바꿔 생각해도 같은 가르침이 됩니다. 권력은 원래 ‘나의 것’이 아니고,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사랑하는 것도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권력을 따라다니다가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것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4) ‘설날’이 ‘서러운 날’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을 서러워하는 이들, 또 하느님 앞으로 갈 날이 더욱 가까워진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설날을 서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표시일 뿐입니다. 신앙인은 ‘설날’을 ‘설레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깨달을 기회를 조금 더 얻은 날, 또는 주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얻은 날로 생각해야 합니다. 기회를 얻었음을 믿는다면,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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