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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설 / 정인준 신부님 ~

1월 29일 수요일 (백) 설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3-15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이곳 이민사회의 교우들에게 했던 강론입니다. 카페식구들이 이민사회의 어려움을 \ 이해하시라고 또 기도를 청하기 위해서 그대로 옮겨 봅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

찬미예수님, 교우 여러분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설입니다. 고국에는 지금 설은 센다고 해서 온 가족이 모이고 서로 기쁨의 시간을 갖고 있겠지요. 우리도 비록 고국은 가지 못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부터 불렀던 노래를 한 번 해볼까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오늘은 고향에 계시는 부모 친지를 찾아보고, 또 돌아가신 선조, 또 부모들을 위해 제사를 바치고 또 묘소를 찾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 정성을 다해 빚었던 만두와 떡국, 전 등의 제사 음식을 식구들이 한테 모여 나누며 서로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기도 합니다.

동네 어른들게 세배를 드리고 어린이들은 세뱃돈을 챙기는 기쁨도 나누기도 합니다. 설빔이라고 해서 가난했던 시절 평소에는 입어보지 못했던 옷을 만들거나 사서 입는 설레임과 기쁨은 우리 모두가 갖는 아름다운 추억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난했던 시절 고무신을 받았는데, 그것이 너무 좋아 학교에 갈 때에는 벗고 걸어갔다가 교문에 들어서면서 슬며시 신고 다시 교문을 나설 때에는 벗어서 맨발로 돌아오던 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가난했던 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자랑할만한 것도 못됩니다. 그러나 그 가난이 늘 저의 삶, 특히 풍요와 낭비에서 저를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지역은 틀리고 집안이 다 틀려도 공통적인 것은 전쟁을 겪고 나서 모두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민 사회에서 배고프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풍요의 사회에 살면서 무감각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삶이 되겠지만 그래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가 가난했던 고국의 추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추억이 우리에게는 이민사회에서 더욱 억척스럽게 살아 남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늘 검소하고 겸손한 자세로 이곳의 삶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또 다시 노래 하나를 부르고 싶습니다. 박건호 작사이면서 박인희 작사인 ‘모닥불’입니다.

모닥불 피워 놓고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오늘 야고보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돈을 모으려는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세상의 덧없음과 예측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우리가 살면서 돈 때문에 바둥대며 살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도의 설명대로 우리의 삶이 늘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다가 꺼지는 사이에도 연기는 나지만 금방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너무 모으는 데에만 급급하다보면 사라지는 세상에서 헛됨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상의 헛됨을 알지만 서로 뜻을 같이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의 헛되고 사라진다해도 여러분은 이국 땅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마련하고 가톨릭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사라진다해도 오늘 이 자리에서 행복하고 다행인것은 우리가 바로 선조들을 위해서 또 살아있는 부모나 친지,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됨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진리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깨어서 기다라는 충실한 종의 삶을 이 공동체에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민수기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주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알려주라는 말씀이지만 또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5)

우리를 통해서 우리는 선조들이 복을 수 있습니다. 또 돌아가신 분들과 친지들을 위해서 우리가 바로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바로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얼굴을 통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전달할 수 있으니 우리 자신도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오늘 신문에 이 땅의 ‘이민2세가 경제력, 학력에서 미국 평균을 따라 잡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서 이민의 역사를 시작하신 분들의 숨은 아픔과 노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런 성장의 우리의 모습이 되었을까요? 오늘 설이 주는 교훈은 바로 조상들 뿐 아니라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어른들은 생산성도 없고 손해를 끼치는 힘없는 계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남모르는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은 비록 왜소하고 보잘것 없는 몸이 되었다하더라도 우리는 이분들을 존중하고 공경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민사회에서 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비방과 비판을 일삼는 일반세상의 풍조와는 다르게 주님을 모시는 이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고 우리 고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이 땅에서 심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그 부인이 김치를 담그고 그 설명을 자세히 한 것을 이곳 매스컴이 실었던 기사를 보았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김치나 된장, 고추장을 부끄럽거나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문화가 이곳에서도 자랑으로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2세가 자랑스럽고 더군다나 우리의 반만년의 역사와 전통이 또한 이민 사회에서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를 받아준 이 곳 이 땅도 우리가 감사하면서 새로운 자부심으로 이곳에 새로운 문화를 심고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민사회에 살면서 우리 조상들이 심어준 자랑스러운 문화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 설을 맞으며 우리는 다시 조상들을 기억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미사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우리도 늘 깨어서 기다리는 충실한 주님의 종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교우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