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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주님 봉헌 축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체험 묵상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며, 동시에 교회가 축성 생활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된 순간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드리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저는 봉헌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1991년 8월 23일 사제서품을 받을 때입니다. 

 

서품 예식 중에 ‘모든 성인 호칭 기도’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교구장님을 비롯한 서품식에 참석한 모든 분이 무릎을 꿇고 새 사제들이 주님이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사제가 될 수 있기를 청하면 모든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서품 대상자들은 바닥에 엎드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그렇게 엎드려 있는 동안 신학교에서 있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던 분, 은사 신부님, 함께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던 동료, 갈등과 번민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모든 성인 호칭 기도가 끝나면 엎드렸던 서품 대상자들은 일어나서 주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이는 단순히 유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봉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갈망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위해 살고, 무언가를 위해 헌신하며, 더 큰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자신의 책 ‘월든(Walden)’에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숲에서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삶에서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며, 헌신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충만함을 찾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러한 단순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습니까? 저는 보스턴에 있는 월든 호수를 몇 번 다녀왔습니다. 미국의 위대함은 경제와 문화에 있는 것 같지만, 그 뿌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사상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전은 단순한 물리적 건물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과 한나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며, 평생 기다려온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과 깊은 만남과 이웃과의 관계를 성화하는 공간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성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일 수도 있지만, 가정과 직장, 우리의 일상 속 관계가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너 관계" 이론은 성전을 관계의 공간으로 확장해 줍니다. 

 

우리가 이웃과 진정으로 만나고 사랑할 때, 그곳이 곧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군대에서 군종 신부님은 전방 철책선을 찾아와서 병사를 위해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때는 철책선이 제단이 됩니다. 찬 바람 부는 초소가 성전이 됩니다. 저도 광야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께 예배드렸던 광야, 그 광야가 제단이고, 바위가 제대였습니다.

 

오늘은 축성 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수도자들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며, 세상에 사랑과 희망의 빛을 비추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축성 생활은 수도자들만의 특권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자기의 삶 속에서 하느님께 헌신하며 축성 생활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는 사랑의 헌신을 통해, 직장인은 정직과 성실로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기억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축성 생활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작은 길(Little Way)"을 통해 일상의 작은 일들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일상의 작은 일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축성 생활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에 우리는 초를 축성합니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며, 소멸하면서도 다른 이에게 빛과 온기를 전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모습입니다. 2024년 추운 겨울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촛불을 넘어 응원봉을 들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빛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희생과 헌신이 세상에 빛과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맞아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누구에게 봉헌하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성전으로 부르시며, 우리를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랑과 희망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는 축성된 삶을 살아갑시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