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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연중 제 5주간 금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다.”(마르 7,35)

 

2월 14일 연중 5주 금요일 (마르 7,31-37)

 

복음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열린 마음으로 맡기고 받아들이는 삶♣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갖 피조물을 우리에게 맡겨주셨다. 나아가 그분은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창조 사업을 이어가고자 하시고, 이 순간도 당신의 창조의 얼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일까?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자.

인류 타락의 원인은 인간이 하느님을 믿지 않고, 하느님처럼 되려고 하는 교만에 있다(창세 3,1-4). 자만심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주신 모든 것을 사람들이 기꺼이 서로 나누고 서로 위해 주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신다. 교만한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앞세운다. 그는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려 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타인을 노예화하고 자신도 물질과 탐욕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게 창조하신 생명의 낙원은 실낙원(失樂園)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뜻은 남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하느님께 순종하며 서로를 이롭게 하며 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떤가? 제 잘난 멋에 살고, 마치도 자신이 심판관이나 된 듯이 다른 이들을 저울질하고, 자기 기준에 모든 것을 꿰어 맞추려 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는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자유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자 할 때, 우리는 죽음의 길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중요시 여기며 그분께 온전히 맡기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벙어리는 예수님께 맡기려는 자세로 믿음을 가지고 다가갔다. 이 벙어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 치유되기에 앞서, 이미 부족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알고, 또 ‘스스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았다. 또한 그는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는 물론,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았기에 사람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늘 깨어있었다.

 

성인이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나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우리도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통째로 맡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군중 가운데서 벙어리를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7,33) 치유해주신다. 그분은 군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행해진 신비 그 자체를 보여주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호기심에 가득 찬 군중들의 시선을 피해 그 기적을 행하고자 하셨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하는 봉사나 선행에 대하여,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은근히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은 무엇이나 이미 하느님께서 보고 계시며, 저절로 드러나 모두에게 흐뭇함을 안겨주고 서로를 살리는 힘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예수께서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자 곧바로 병자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7,34). 벙어리의 치유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병자든 죄인이든 모두를 조건 없이 사랑으로 받아주셨다. 이것이 바로 모든 피조물을 풀리게 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재창조의 열쇠이다. 우리 삶의 결정적 중심이요 하나뿐인 방향이신 주님께 우리의 삶을 통째로 내맡기면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받아들이도록 하자.

받아들임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너그러이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며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받아들임은 차별없이 모두를 향하여 여는 것이다. 그것은 남의 죄, 약점, 고통, 허물 등도 기꺼이 함께 지는 것이며, 계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다.

 

받아들임은 자기 마음에 드는 면만이 아니라 인격 전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침묵 안으로 모든 것을 돌려 드리며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주님께 모두를 내맡기고 사랑으로 서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서로를 살리는 살맛나는 세상’을 이루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