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금요일 강론>(2025. 2. 21. 금)(마르 8,34-9,1)
복음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34-9.1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37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38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9,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희망, 믿음, 기쁨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입니다.』 1) 여기서 ‘부끄럽게 여기다.’ 라는 말은, “관계를 끊다. 관계 맺기를 거부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은, “누구든지 나를 믿기를 거부하고,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또는 “누구든지 내가 주는 구원을 받기를 거부하면”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는, “그는 마지막 날 심판 때에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입니다. <그 자신이 구원받기를 거부해서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는, 영혼 구원을 얻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죄 속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고집부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는, 예수님께서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때에는 심판하시는 ‘심판관’으로 오실 것입니다. 2)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한탄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마태 23,37-39).” 이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면서 예수님을 박해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박해자들과 죄인들도 ‘예수님의 구원사업의 대상’입니다. <아무도, 그 어떤 죄인도 구원사업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으려고 애쓰시는 ‘착한 목자’이신 분인데, 구원받기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자들은 예수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기 싫다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은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때’입니다.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는,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그날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이다.”입니다. <반대로, ‘지금’ 회개하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어떤 어려움’은 일상생활의 ‘작은 불편’에서부터 목숨을 잃는 일, 즉 ‘순교’까지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누구든지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원받기를 희망하기 때문이고, 그 구원을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나의 희망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입니다. 바로 그 확신에서 ‘기쁨’이 생깁니다. 희망, 믿음, 기쁨이 곧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누구에게나 “신앙생활은 기쁨의 생활”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처음부터 신앙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이 있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신앙생활이 힘들기만 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희망이 잘못되었거나, 즉 잘못된 것을 희망하는 사람이거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4)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희망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하면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사람은 그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온 세상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입니다.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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