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수요일 강론>(2025. 2. 26. 수)(마르 9,38-40)
복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8-40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싸움에 중립이란 없습니다.』 1)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신자)라는 것을 사도들이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빌려 드린 사람(마르 11,5-6), 최후의 만찬 때에 방을 내준 사람(마르 14,15) 등이 그 예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만, 사도들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신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 아리마태아 요셉과 니코데모 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요한 19,38-39).” 아마도 사도들은 아리마태아 요셉과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두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과 함께 다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박해 때에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숨기는 일이 훨씬 더 많았고, 신자들끼리도 누가 신자인지 아닌지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자에게 자기가 신자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을 때 암호 같은 것을 사용했는데, 그 암호들 가운데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 바로 물고기 그림입니다. 물고기 그림을 사용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모으면, 물고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2)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요한 사도가 그것을 막은 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에 무슨 마법 같은 힘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함부로 사용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었기 때문입니다(사도 19,13-16). 또 요한 사도가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기억하고서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이 말씀은, 우상숭배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는 것을 금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우상숭배자들이 성사를 모독하는 것을 막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권한이 없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성사 집전을 한다면, 그것은 성사 모독죄가 됩니다. 요한 사도의 행동을 편협하고 옹졸한 집단 이기주의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십계명 제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라는 계명은 ‘예수님의 이름’에도 적용되는 계명입니다.> 3) 요한 사도는 ‘좋은 의도’로 행동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막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라는 말씀은, 그 ‘어떤 사람’이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켰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신자라는 것을, 당신의 권한으로 확인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그냥 믿는 것이 아니고, 사도들과 같은 수준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귀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면, 쫓겨나기는커녕 그 사람에게 덤벼들 것입니다(사도 19,15). 그런데 그냥 순순히 쫓겨났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을 나쁘게 말한다.’ 라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부인한다.’, 또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부정한다.’, 또는 ‘자기는 예수를 안 믿는다고 공언한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신앙에는 중립이 없다.”, 또는 “마귀들을 쫓아내는 싸움에는 중립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편이 아니면 마귀들 편입니다. 이 말씀을, 세례를 받지 않아도, 신앙을 고백하지 않아도, 반대하지만 않으면 다 신앙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그렇지만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또 세례를 받을 기회가 없어서 신앙인이 되지 못했더라도,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착하게 살고, 사랑 실천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구원하신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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