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2주간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떠남의 여정
“마지막 떠남, 죽음”
“하느님의 사람,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얼을 지니셨기에
세상의 영화를 업신여기고 버렸도다.”(입당송)
오늘은 참 아름다운 축일입니다. 바로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인 우리는 오늘 사부 성 베네딕도의 별세 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흡사 성인의 천상축일인 죽음의 날이 축제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떠난 분들의 죽음은 슬픔보다는 모두가 축제의 선물처럼 느껴지는 기쁨 충만한 장례미사들입니다.
성인의 마지막 떠남인 아름답고 거룩한 임종장면을 소개하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이 쓴 <베네딕도 전기> 37장 내용은 읽을 때 마다 늘 새로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 내용중 길다싶지만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분은 임종하시기 엿새 전에 당신을 위해 무덤을 열어 두라고 명하셨다. 곧이어 그분은 열병에 걸리셨고 심한 열로 쇠약해지기 시작하셨다. 병세는 날로 심해져서 엿새째 되던 날 제자들에게 당신을 성당으로 옮겨 달라고 하셨다. 그분은 거기서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영하심으로써 당신의 임종을 준비하시고, 쇠약해진 몸을 제자들의 손에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흡사 불가의 거룩한 고승들의 죽음을 보는 듯, 아니 그 이상 거룩하고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성 프란치스코 <태양의 노래>에 나오는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죽음조차 선물로 감사찬미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임종도 참 아름다운 감동입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이 아름답습니다. 문득 가톨릭 교회의 3대 거장, 성인 경지에 이르렀던 문학에 최민순 신부, 음악에 이문근 신부, 성서에 선종완 신부 세분이 생각납니다. 제 장례미사때 입당성가는 “오 아름다워라”로 시작하는 성가에, 강론은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작 좌우명 고백시로, 퇴장성가는 위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 감미로워라”로 시작되는 태양의 노래를 불러달라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런 준비가 성인의 말씀처럼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초연한 삶을,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을 살게 합니다. 이어지는 임종후 성인의 환시를 본 두 형제의 증언입니다. 말그대로 하늘길을 따라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하는 성인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방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하늘에 이르기까지 똑바로 나 있는 길을 보았는데, 그 길에는 양탄자가 깔려 있고 수많은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자 그 위에 빛나는 옷을 입은 존엄한 분이 나타나시어 이길이 누구를 위한 길인지 알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모른다고 하자, “이 길은 주님께 사랑받는 베네딕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다”라고 그분께서 말씀하시더라는 것이다.’
이래서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천상고향집으로의 귀향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희망의 죽음을 향해 사는 이들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와 같은 삶을,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을 살 것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떠남의 여정이 아름다울 때, 마지막 떠남인 죽음도 아름다운 축제일 수 있습니다. 정말 잘 살았는가는 공동체에 남긴 결과를 보면 압니다. 공동체에 평화의 일치를 남겼느냐 혹은 분열의 불화를 남겼느냐를 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그의 평생 삶입니다.
사실 성 베네딕도의 생애를 보면 떠남의 여정임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누르시아 고향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수비아코로, 수비아코에서 몬테가시아노로, 마지막 몬테가시아노에서 천상고향의 죽음의 떠남으로 요약되는 생애입니다. 성인의 죽음의 떠남을 노래하는 미사중 부르는 부속가 전반부도 아름답습니다.
“새빛 선물 가져오는 위대하온 지도자를 기념하는 안식일,
성총받은 그 영혼이 노래하는 찬미가는 마음속에 울리네.
동쪽길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성조 용모 감탄 울려 퍼지네.”
오늘 우리는 복음과 독서에서 떠남의 모범인 예수님과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십자가의 길 죽음에 앞서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기도(요한복음17장)가 감동적입니다. 당신 자신을 위한 기도, 제자들을 위한 기도,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한 고별기도가 오늘 복음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믿는 이들 모두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예수님이요 이를 위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최고의 선물이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 미사입니다. 제1독서의 아브라함이 떠남의 장면도 아름다운 감동입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에게 복을 내리겠고, ‘너는 복이 될 것이다’(you will be a blessimg).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이어지는,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이었다(창세12,4)’ 라는 대목이 신선한 감동입니다. 말그대로 떠남의 여정에 충실했던 75세 고령의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현역의 영원한 청춘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에게 주어진 축복이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현재진행형중에 완성의 여정중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삶자체가 복이 었던 예수님처럼, 아브라함처럼, 세상의 복이 되어 살다가 떠나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삶이겠는지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을 살 수 있도록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강물도 고이면 썩듯이 삶도 고이면 썩습니다.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물같은 떠남의 여정이 되기를 소망하며 쓴 좌우명시 일부를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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