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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3주간 수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사순 제 3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법과 규칙, 상식의 준수

영성의 기초

 

 

 

오늘 복음과 독서의 주제가 일치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과 율법’이고, 독서는 하느님의 법입니다. 공동체 삶의 기초가 법과 규칙입니다. 공동체의 그누구도 법이나 규칙위에 있지 못합니다. 누구나 법앞에 평등은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들에게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오히려 지도자들은 법이나 규칙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제가 1992년부터 지금까지 33년동안 금요강론을 멈춘적이 없는데 다룬 내용은 <베네딕도 수도규칙>이었고 저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그날까지 반복하여 이 규칙을 공부할 계획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명하게 실천되어야 할 법이 유린됨을 목격합니다.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두려워할줄도 모르고 너무 뻔뻔하게 공공연히 법을 위반하면서 법위에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런 사람들 많아 국민들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도 망합니다. 그래서 법을 가장한 도적 무리란 뜻의 ‘법비(法匪)’라는 말도, 온갖 법 지식을 이용해 성긴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추(法鰍;법꾸라지)’란 말도 회자됩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인간 누구나 공감하는 불문율입니다.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법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법없이는 못삽니다. 법이 있어야 생존경쟁치열한 약육강식의 시대에 약자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규칙이 준수되지 않으면, 특히 지도자들이 법을,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서서히 내적으로 무너집니다.

 

 

 

필연적으로 이런 불의하고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 공동체는 내적분열을 겪고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법이 잘 지켜져야 공동체의 성원들도 공동체를 사랑하며 효능감을 지니고 살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의 법과 규칙의 준수는 함께 하는 공동체의 성원들도 그대로 보고 배우기에 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법과 규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옛 수도원을 창립했던 분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분들이요 삶자체가 살아있는, 걸어다니는 복음서라 할 정도로 보고 배울 법이나 규칙 자체였기에 규칙이 없어도 평화공존의 융성한 공동체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살아 생전에 우선 마련한 것이 법규와 규칙이었습니다. 카리스마와 관계없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우선적인 것이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동의하고 합의한 법규나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삼학(三學)도 계정혜(戒定慧)의 순서입니다. 계울준수의 바탕위에 안정(安定)이 있고 관상의 지혜가 뒤따릅니다. 영성신학도 예전에는 수덕신비신학이었으니 수덕의 준수위에 바탕한 신비신학임을 말해 줍니다. 이런 법규나 규칙의 준수가 없는 공동체라면 사상누각, 모래위에 공동체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예전 장상의 언급도 있지 못합니다. 상식과 양식에 기초하지 않은 영성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영성을 말하기전에 우선 기본이 되는 상식부터 규칙부터 지키라는 것입니다.

 

 

 

제가 맨처음 베네딕도 수도자는 ‘평화의 전사’라는 말마디를 배운 것은 황춘흥 다미아노 선배수도사제였고 이분이 당신을 찾는 수녀들과 주고 받았다는 문답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분이 없었다면 제가 수도원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제 수도성소에 주님의 가교역할을 했던 결정적인 분으로 타계하신지 이미 오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마워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

물음에 신부님을 일언지하에 답변하신 내용은 단 하나였습니다.

“규칙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이치럼 잘 사는 것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요 단순합니다. 규칙대로 살면 됩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규칙을 사랑하고 존중하여 자발적 정신으로 규칙대로 살아야 공동체의 기강도 서고 견고한 공동체도 건설됩니다. 대통령이나 입법, 사법, 행정부 지도자들 역시 나라 공동체 질서의 기초와 기본이 되는 법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 신명기 제1독서의 모세야 말로 살아있는 법과 같은 분임을 봅니다. 모세가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도 규정과 법규의 준수였습니다.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할 것이다.”

 

 

 

이런 종교가 명품종교요 이런 신자가 지혜롭과 슬기로운 명품신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역시 단호하기가 추상같습니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사랑과 존중은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존중의 표현입니다. 바로 그 사랑의 법이 오늘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입니다. 율법주의자가 아닌 율법정신의 사랑으로 살았던 ‘살아 있는, 걸어 다니는 복음서’와 같은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빛날 사랑의 율법이요,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모세처럼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법 준수에 철두철미한 율법정신의 사랑이 체화(體化)된 분입니다. 모세와 예수님, 이분들의 율법사랑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요, 절대로 율법주의자가 될 수 없는 분들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점차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살아 있는 걸어 다니는 사랑의 복음서’가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