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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3주간 수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사순 제 3주간 수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향심 기도

 

하느님의 숨

2025.03.25. 17:02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3월 25일 화요일 (호명환 번역) 열세 번째 주간: 향심(centering)과 침묵(silence), 고요(stillness)

 

향심 기도(Centering Prayer) 안에서 우리는 단순하게 우리의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떠나 보냅니다.

 

 

마리아의 가장 위대한 선물은 당신 삶 안에서의 하느님 현존과 행위에 마음을 맞추고자 하는 기꺼움이었습니다.

- 토마스 키팅(Thomas Keating),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Mary, the Mother of God)

 

 

CAC의 은퇴 운영진 신시아 부르조(Cynthia Bourgeault)는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가르치는 데 수십 년의 삶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줍니다:

 

 

40년이 넘는 동안, 다음의 네 가지 지침을 통해 전 세계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향심기도가 성공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1. 여러분 내면의 하느님 현존과 행위에 마음을 맞추겠다는 지향의 상징으로서 신성한 단어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2.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잠시 몸가짐을 바로잡으신 후 조용하게 여러분 내면의 하느님 현존과 행위에 마음을 맞추겠다는 지향의 상징으로서 그 신성한 단어를 떠올리십시오.

 

3. 여러분의 마음에 [몸의 감각과 느낌, 생각의 이미지나 다양한 상(像) 등] 어떤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그 신성한 단어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십시오.

 

4. 기도가 끝날 무렵에 약 2분 정도 눈을 감은 채 침묵 안에 머무십시오.

 

 

토마스 키팅 신부는 하루에 두 번 20분씩 이 기도를 바치라고 권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정말로 이 향심 기도를 통해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떠나 보냄으로써 깊은 묵상이나 명상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우리 기도 수양의 주관적인 경험일 수 있으며, 이는 정확하게 이 기도를 수양하는 초보자들이 경험하는 당혹스러움일 것입니다. 향심 기도 피정이 시작되던 초기에 키팅 신부가 직접 이끌었던 피정에 어느 수녀가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20분간의 향심기도에 맛들이려 노력하다가 좌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토마스 신부님, 저는 이 기도에 젬병인가 봅니다. 20분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거든요!"

 

 

"정말 훌륭해요!" 한치의 주저도 없이 키팅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로 돌아갈 오만 가지 기회입니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향심기도의 정수를 말해 줍니다. 향심기도는 본질적으로 우리 마음이 어떤 특별한 아이디어나 감상에 젖어 있다가 거기서 떠날 때마다 우리가 더 작고 더 위축되어 있는 의식(consciousness)에서 벗어나 열려 있고 확장된 의식(awareness)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열린 의식 안에서 신성한 현실에 들어서게 되며 여기서 모든 것에 대한 전적으로 새로운 인지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돌아섬의 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14세기의 익명의 저자에 의한 고전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만 하느님께 이르르고 친밀하게 머물 수 있을 뿐이지, 생각을 통해서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2] "사랑"은 우리가 말하는 열려 있고 확장된 의식을 표현하는 이 저자의 애정이 담긴 단어입니다. 이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 존재 전체 안으로 스며드는 더 깊은 앎의 길이 점차로 열리게 됩니다.

 

 

40년이 넘는 향심기도의 경험을 통해 저는 이 "사랑"이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감정이나 느낌과는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마음 깊은 곳에 닻을 내리고 있는 비-이원론적 인지(non-dual perception anchored in the heart)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이요 그에 해당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이 익명의 저자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 것은 옳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작용하는 너비는 존재들에 대한 친밀감의 정도이며, 이것이 바로 존재들과의 공감의 울림을 통해 내면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 자신의 시대보다 수 세기 앞서 전적으로 다른 인지 방식을 묘사하는 비유를 찾아낸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삶을 제 이름 때문에 고민해 왔습니다: 그레이스(Grace: 은총). 오늘의 묵상, 즉 [은총은 하느님의 이름입니다.]는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 이 묵상 글은 제가 순간적으로 경험하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들을 상기시켜 주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 다음에 주어지는 은총을 받기 위한 유일한 전제 조건은 이전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특히 이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80세인 저는 선물에 또 선물을 받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장, 아름다움, 아픔, 경이로움, 기쁨, 그리고 알지 못함 등등.... 저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쁘고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선물이며, 저를 겸허하게 해 주고 놀라움으로 이끌어주는 선물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은총은 (그리고 Grace인 저도!) 참으로 놀라운 선물입니다.

 

—Grace R.

 

 

[1] Thomas Keating, “The Method of Centering Prayer: The Prayer of Consent,” Contemplative Outreach.

 

[2] The Cloud of Unknowing, trans. Ira Progoff (Delta Books, 1957), 72.

 

Adapted with permission from Cynthia Bourgeault, The Heart of Centering Prayer: Nondual Christianity in Theory and Practice (Shambhala, 2016), 28–29, 14, 120–121.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Exisbati, Untitled (detail), 2021, photo, India,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침묵은 풀밭 위에 뻗져진 저 손처럼 지금 여기에서 살갗을 스치는 풀잎 하나하나를 단순하고 깊이 의식하듯이 현재의 순간에 깊이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