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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3주간 토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사순 제 3주간 토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관상: 동정심으로 향하는 길!

 

하느님의 숨

2025.03.28. 17:35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3월 28일 금요일 (호명환 번역) 열세 번째 주간: 향심(centering)과 침묵(silence), 고요(stillness)

 

우리는 동정심을 키우기 위해 기도하고 희망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리처드 신부는 우리가 하는 정기적인 관상 수양에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목적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관상이 하는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에고로부터, 즉 거짓 자아로부터, 그리고 성공이나 돈 혹은 통제력을 얻기 위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관상의 이런 의미는 절대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벗어남의 노력이 다른 무언가를 부여잡기 위한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관상이나 묵상의 수양을 몇 달, 혹은 몇 년간 한 후 여러분이 결국 찾아낸 것이 무언인가요? 제가 존재들의 눈물이라는 묵상 글에서 세상의 고통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연민과 동정, 공감 같은 것이 어느 정도의 관상이나 명상 수양 후에 여러분 마음에서 더 커졌나요? 가자 지역의 여성들과 우크라이나의 어린이들,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이들, 심지어는 미국과 전 세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만일 "내려놓음"으로 인해 생겨난 빈 공간이 곧바로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과의 깊은 연대를 추구하려는 열정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저는 그런 관상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관상이거나 의미 있는 관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개인의 욕구를 채우는 영성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개인적인 의미에서만 순수한 동기를 찾으면서 관상을 수양해 왔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정말로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앞으로 몇 년간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한 동기를 찾기 위해 노력할 건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있어 긍정적인 사랑의 행위란 과연 무엇인가요?

 

우리가 침묵의 묵상이나 기도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참으로 기도하는 바가 우리 안에서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기도와 관상의 거짓 동기와 에고에 기초를 둔 관심사를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인간의 고통에 대한 동정과 연민, 그리고 인간의 고통과의 연대를 위해 기도하고 희망하고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십자가가 의미하는 바라고 믿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들어올려진 예수님의 두 팔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하느님의 연대와 동정의 마음과 행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아침은 물론이고 매일 아침 침묵 가운데 앉아 있을 때 우리가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이런 연대와 동정의 마음을 가지기 위한 기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하느님 사랑에 우리를 합당하게 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규정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만의 정화를 위해 어떤 규정을 지키고자 하는 지향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다른 이들의 고통에 대한 동정의 힘이 커지게 하는 지향을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동기라면 그것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그리고 우리가 완벽한 실천을 한다 해도 거기에는 진정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로 무엇이 우리에게 이런 수양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지를 살펴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완벽한지에 대해서보다는 우리가 참으로 서서히 성장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야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볼 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고통받는 이들과의 함께함 안에서 성장하고, 인간과 인간을 초월한 고통, 즉 존재들의 눈물과 연대하며 성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한동안 매일 묵상 수신을 중단하였다가 다시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묵상 글을 읽을 때마다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전도 받습니다. 여기에 함께할 수 있음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Nancy M.

 

Adapted from Richard Rohr, Morning Sit, December 9, 2024. Unpublished teaching.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Exisbati, Untitled (detail), 2021, photo, India,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침묵은 풀밭 위에 뻗져진 저 손처럼 지금 여기에서 살갗을 스치는 풀잎 하나하나를 단순하고 깊이 의식하듯이 현재의 순간에 깊이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