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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4주일 / 키엣 대주교님 ~

 사순 제4주일. 키엣 대주교님.

진실된 화해

 

 

 

‘화해’는 부활절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주님과의 화해 보다 더 어려운 것은 ‘가족과의 화해’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자한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자유를 존중하여 떠나보내면서 다시 받아들일 준비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방탕한 삶을 살다 돌아온 아들이지만 아버지는 성대한 축하를 합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계신 관대한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이기적인 형제는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동생이 재산을 갖고 떠난 후 형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는 원망만이 남아 황폐한 영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자신의 형제를 동생이 아닌 ‘저 아들’이라고 부르는 그는 이미 형제애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큰 아들처럼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증오를 품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정직하고 도덕적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인자한 아버지는 관대한 사랑을 지니신 주님이시고, 동생은 쉽게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다시 또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편협한 큰 아들은 가족과 이웃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 가는 것조차 막는 우매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작은 아들은 비록 불효를 저질렀지만 아버지께 돌아가 드릴 말씀을 준비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이 준비한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달려가 안아 주었습니다. 사랑은 수식어가, 긴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참된 진실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사순절의 반이 지났습니다. 바오로 성인의 말씀을 함께 되새겨보며 나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십시오. 비록 방황과 우매함으로 수없이 많은 죄를 짓고 있지만 나를 기다리시는 따뜻한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화해’는 새로운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참회’와 ‘화해’는 주님 곁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비록 주님과 멀어져 방황하고,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나를 언제까지나 어두운 골목 끝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신 아버지이신 주님께서는 내가 그분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시고, 내가 그분에게 용서를 빌기 전에 나를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인자한 아버지이신 주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형과 아우 중. 나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2. 오늘 복음의 구절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나의 가슴에 닿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3.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필요한 참회와 화해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