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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4주간 화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파스카 성야 세례 서약 갱신 후 따름 노래).>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예수님


이스라엘에는 생명을 풍요롭게 해 주는 갈릴래아 호수와 생명이 살 수 없는 사해(死海)가 있습니다. 먼저 갈릴래아 호수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갈릴래아 호수는 물이 흘러가는 곳입니다. 이 호수는 주변에 생명을 주는 수원으로,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며 사람들과 생명체들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물이 흘러가는 것, 즉 나눔과 소통의 의미입니다. 나눌 때 진정한 생명이 자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나눌 때, 그 안에서 진정한 연대감과 사랑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사해는 어떨까요? 사해는 물을 흘려보내지 않고, 오직 흡수만 합니다. 


그럼에도 사해는 말 그대로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사해는 비유적인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사랑과 은혜를 움켜잡고 나누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고독과 공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베풀고, 사랑할 때 비로소 생명이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8장에서 나온 말로, "가장 높은 선(善)은 물과 같다."라는 뜻입니다. 노자는 물의 덕(德)을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를 설명합니다. 물의 덕은 다음과 같습니다. 겸허함(謙虛),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흐르는 물처럼, 인간도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로움(利),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강제적으로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위를 깎고 길을 만듭니다. 이는 ‘유연한 강함’을 의미합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물은 인위적으로 어떤 틀에 맞추려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을 따릅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정신을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융통성과 적응력,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지 그 형태에 맞춰 변화합니다. 이는 환경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청정함과 정화(淨化),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맑게 합니다. 


우리도 마음을 깨끗이 하고 타인을 정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겸손과 사랑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물처럼 살아가는 삶은 곧 겸손과 사랑, 그리고 이웃을 위한 희생과 섬김을 실천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물과 관련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2번 나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셨고,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도 우물가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 네가 마시는 물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물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샘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물이 힘이 있고, 물이 영적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물을 그렇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물은 단순히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말라 버려지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살아야만 영적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38년 동안 병고에 시달렸던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꼭 물속으로 들어가서 씻어야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통로입니다. 


기도, 전례 참여, 단체 활동 등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주님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될 수 있고, 주님의 크신 사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체성사를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과 피를 나누시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눔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소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생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갈릴래아 호수처럼 사랑을 흘려보내고, 서로를 보살피고 돕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물처럼 흘려보내는 삶을 살면, 우리 주변에 많은 이가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도 함께 사랑을 나누고 소통하는 삶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주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주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