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4주간 금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사순 제 4주간 금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사랑의 정의를 실현하는 토대는 관상입니다!

 

하느님의 숨

2025.04.03. 16:34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4월 3일 목요일 (호명환 번역) 열네 번째 주간: 관상적 일탈

 

사회 정의를 위한 외적인 노력은 힘을 실어 줄 내적인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츠 워커 목사(Reverend Liz Walker)는 Can We Talk(우리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라는 네트워크의 창설자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창출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사회 정의를 위한 일을 지탱시켜 주는 데 있어 관상과 치유의 수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합니다:

 

 

[관상의 수양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공간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통 한가운데서 도움을 구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고통을 우리 스스로도 달래야 합니다. 우리는 혼돈과 아픔 한가운데서도 그 상황들을 뛰어넘기 위한 방법으로 아픔을 공적으로 알리기도 했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 우리 조상들을 존경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그런 관습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우리 공동체(Can We Talk Network)도 그런 희망과 가능성 안에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치유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창조적인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치유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바라] 홈스 박사(Dr. Barbara Holmes)는 시민 인권 운동이 흑인 교회 안에 있던 관상의 영에 의해 탄생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

 

정의 운동에 불을 지핀 불꽃은 교계적이고 제도적인 흑인 교회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불꽃은 제도 교회 내에 눈에 띄지 않게 있던 돈키호테식의 기발하고 유연한 심장부, 즉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개방된 신비적인 중심점에서 시작되어, 먼저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붙여 주었으며, 그 다음에 어른들의 마음에 불을 붙여 그들로 하여금 내부로부터 박차고 일어나 바깥쪽으로 함께 나가 관상을 중심으로 하는 행렬을 하게끔 이끌어 주었습니다. [1]

 

+++++++++++++++

 

 

Can We Talk 네트워크에서 하는 관상 수양은 그런 시민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픔을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우리 영혼의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치유받기 위해 꼭 필요한 내면의 일로서 우리는 이 일을 참으로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와 같은 치유 공동체가 사회 정의 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일이 별 활력이 없는 일이고 - 사회 변화를 촉진시키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한 비평가들은 역사 전반에 걸친 사회 운동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관상적 행위의 중심성을 의식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1964년에 테네시주 멤피스의 인종차별을 하던 장로교 교회들에 대항하여 광장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시위를 벌였던 여러 인종의 학생들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것이 관상이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정의를 위한 외적인 일은 그 일을 낳아주고 그 일에 힘을 불어넣어 줄 내적인 노력 안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내면의 삶을 치유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동체로서의 치유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과, 들어주는 일, 함께 노래하며 운동에 참여하는 일은 모두 사회 변화를 위한 힘든 노력에 힘을 실어주는 데 있어 필수적인 내면의 치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워드 써만은 시위 행진과 그 활동을 이끌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과 사상, 그리고 관상을 위한 그의 투신은 비폭력 저항에 뿌리와 토대를 둔 운동에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제도적인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는 행진이나 시위를 선두에서 이끄는 이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드러내어 건강한 길을 찾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들, 즉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로서 그 모든 일에 참여하는 이들입니다. 이렇듯이,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의 슬픔을 진실하게 대면할 때 우리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우리 공동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친절을 주고받는 것은 저의 치유 여정에 있어 중심이 되는 실천이었습니다. 저는 알코올 중독자가 있는 가정에서 성장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저 자신을 참으로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일 저 자신과 그들을 인내롭게 돌보고 지지해 주었고, 그들도 인내롭게 자신들과 저를 그렇게 돌보아 주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때때로 우울할 때면 사람들의 단순한 미소를 보면서, 혹은 낯선 이의 "헬로"라는 인사말 하나를 들으면서 다시 제 기운을 찾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루에 하나씩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체 치유의 열쇠였기 때문입니다!

 

—Diane J.

 

​References

[1] Barbara A. Holmes, Joy Unspeakable: Contemplative Practices of the Black Church, 2nd ed. (Fortress Press, 2017), 113.

 

Liz Walker, No One Left Alone: A Story of How Community Helps Us Heal (Broadleaf, 2025), 191, 192–193. Used with permission of publisher.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Paul Tyreman,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ited Kingdom,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는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고 이끌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래밭길과 돌밭길마저도 헤쳐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