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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5주간 토요일 / 송연진 신부님 ~

<사순 제5주간 토요일 강론>(2025. 4. 12. 토)(요한 11,45-56)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희생’은 남에게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입니다.』

1) 45절의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입니다(요한 11,43-44).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라는 말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표징’이라는 것을, 즉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최고의회 의원들이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라는 말은, “예수 때문에 몹시 걱정스럽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최고의회 의원들의 관심사는 예수님이나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즉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가? 아닌가?”는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고, “어떻게 해야 우리 재산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입니다. 그러나 최고의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싫었고, 예수님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는 것 같고, 예수님 때문에 자기들의 지위와 권한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들은 그런 점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라는 말은, 예수님 때문에 기존의 종교 질서와 사회 질서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말입니다.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독립운동을 일으킨다면, 로마 군대가 와서 무자비하게 탄압할 것이고, 그러면 그동안 누리고 있던 종교의 자유를 잃게 될 것이고, 민족 전체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말입니다.

2)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라는 말은, “너희는 어리석다.” 라는 뜻입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라는 말은, “예수만 죽이면 간단하게 끝날 텐데 왜 걱정하고 있는가?” 라는 뜻입니다.



<카야파의 말은, 겉으로는 ‘민족을 위해서’이지만, 속으로는 ‘우리 기득권층을 위해서’입니다.>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는, “카야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한 셈이 되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다.” 라는 뜻이고,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카야파가 그런 뜻으로 예언한 것은 아닙니다.>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3)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입니다. 그러나 최고의회 쪽에서 보면, ‘살인’입니다. ‘희생’이란, 남을 위해서 내가 하는 일입니다. 만일에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오늘날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자들은, 자기 자신은 남을 위해서 희생할 마음이 전혀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만 희생하라고 강요합니다.>

4) 사도행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 5,38-39).”

최고의회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일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실제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얼마 후에 벌어진 로마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완전히 멸망했고,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인과응보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