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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36-41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36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과 또 멀리 있는 모든 이들,
곧 주 우리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해당됩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증거를 들어 간곡히 이야기하며,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고 타일렀다.
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1-18
그때에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예수님


인터넷 검색 중에 ‘언제나 당당한 사람’의 특징을 읽었습니다. “후회할 것 같으면 반드시 해 본다. 천천히는 가도 뒤로 가지는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거라 인정한다. 실패는 용서해도 포기는 용서하지 않는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자만하지 않는다. 


배움에는 망설임이 없다.” 여러분은 이 중에 몇 개가 해당하는지요? 저는 소심한 편이라 후횔 것 같아도 반드시 하지 않는 편입니다. 모세처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후회할 것 같으면 반드시 하는 성격 같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할지라도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라도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가만히 있었는데 베드로 사도는 ‘선생님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저는 가끔 뒤로 가는 편입니다. 신학생들과 영신 수련할 때입니다. 묵상이 잘 안되면 성서 구절을 반복해서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성서 구절을 다시 묵상하면서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앞으로 가기도 했고, 뒤로 가기도 했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그러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늙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아들까지도 기꺼이 하느님께 바치려고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바오로 사도는 납득이 가지 않으면 교회의 원로인 베드로 사도에게도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을 이방인들에게 강요하는 베드로 사도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살면서 당당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고개 숙이는 것도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때로는 아는 것처럼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때로는 착각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구글 검색과 챗지피티가 있어서 섣불리 아는 척하다가 창피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 할 것은 예라고 말하고,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말하여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저는 실패할 때도 많았고, 포기할 때도 많았습니다. 대형 면허 시험에 한 번 떨어졌고, 쉽게 포기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대한 열망 때문에, 복음에 대한 확신 때문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저는 급한 성격 때문에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편은 아닙니다. 신학교에서도 숙제를 가장 먼저 하는 편이었습니다. 미리 하는 성격이 좋은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미리 준비한 것들이 소용없을 때가 있습니다. 미리 하는 성격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상황이 생겨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 내세울 것이 없어서 자만하고는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 배움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책을 가까이하고 싶은데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베드로 사도에게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방법이 있다고 베드로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은 능력보다, 재능보다, 업적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겸손하게 뉘우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