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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3,1-10
그 무렵 1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8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9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찬미예수님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오늘 그 사랑을, ‘말씀을 나누고, 빵을 떼고, 함께 걷는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도 엠마오 제자들처럼 눈이 열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절망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그들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조용히 함께 걸어주십니다. 말씀을 나누고, 빵을 떼는 그 순간 그들이 눈을 뜨고 알아본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저는 우리 달라스 성당의 새 신자 분과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본당에도 매달 새로운 교우들이 찾아옵니다. 

 

한국에서, 혹은 다른 주에서 처음 오셔서, 낯선 곳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립니다. 어떤 가족은 아버지가 주재원이 되어서 왔고, 어떤 분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 왔고, 어떤 가족은 새로운 사업을 찾아서 왔습니다. 그분들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낯설고, “이곳에서 다시 믿음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셨을 겁니다.

 

그럴 때, 누가 그분들의 옆에 조용히 다가가 동행해 주고 계십니까? 바로 새 신자 분과입니다. 한 달 동안, 미사 후 식사 자리에서 새 신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음식은 단순한 밥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아주 따뜻합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신앙의 첫걸음을 함께 내딛습니다. 

 

본당 홍보 책자도 나눠드리고, 한 달에 한 번은 공동체 미사 중에 새 신자분들을 소개합니다. 그때 모든 신자가 따뜻한 박수로 환영해 주십니다. 그 순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체험했던 방식 아닐까요? 말씀을 듣고, 같이 걷고, 빵을 나누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만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옆에 조용히 앉아주는 것이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누는 것이고,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환영해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천사’가 되어준 사도들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의 공동체는 가진 것을 모두 기쁘게 나누었습니다.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미 부활의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한 번의 설교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신자가 3천 명 이상 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걸인에게 금이나 은을 주는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걷지 못하는 걸인에게 베드로 사도는 천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함께 길을 걷던 나그네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 나그네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천사의 모습으로 나그네를 집으로 모실 수 있다면, 우리가 천사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엠마오 제자처럼 “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구나!” 하고 눈을 뜨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의 길에 동행해 주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따뜻함이 되어주고 있는가?” 그리고 또 이렇게 희망을 품어봅니다.

 

“내가 받은 이 따뜻한 환대를,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엠마오로 가는 길은 친교실의 식탁 옆에도 있고, 미사 후 작은 대화 속에도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고, 또 예수님을 전하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