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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 이영근 신부님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아마 우리 모두는 실망과 절망에 빠져 본 적이 있을 것 입니다. 가던 길을 중단해버릴 만큼, 희망이 꺾인 적도 있을 것 입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버릴 만큼, 믿었던 바가 의혹과 불신으로 바뀌어버린 적도 있을 겁니다. 오늘 <복음>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루카 24,16 참조)

 

그들의 희망과 믿음은 변화되고 깊어지고 정화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루카 24,17) “무슨 일이냐?”(루카 24,19)

 

 

 

그들은 먼저 그분에게서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인지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사실, 실망과 절망에 빠질 때가 가장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기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실망하고 절망에 빠지고 슬퍼질 때, 바로 그때가 우리의 희망을 내려놓아야 하고, 우리의 믿음을 내려놓아야 할 때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믿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과 믿음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 이때가 우리의 뜻과 생각이 변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이때가 우리의 눈이 가려져 있음을 깨달아야 할 때요,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요한 20,25)

 

 

 

그렇습니다. 알아야 할 바를 제대로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믿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설명해주시고,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빵을 떼실 때에”(루카 24,35)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떼어내다’는 ‘분리하다’, ‘파괴하다’, 글자 그대로는 ‘으스러뜨리다’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눈, 곧 신비를 보는 눈은 ‘떼어냄’, ‘부수어짐’, ‘으스러뜨림’에서 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부술 때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생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보았다.”(루카 24,31)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분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생명을 보는 일일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는 까닭입니다.”(콜로 3,1-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6)

 

 

주님!

곁에 함께 걸으시건만,

당신을 알아 뵙지 못한 저를 용서하소서!

길동무가 되어 주시건만,

곁에 없는 것처럼 무시하였음을 용서하소서!

뼈 속 깊이 계시고, 입술에 가까이 계시고,

발등에 등불이신 당신을 알게 하소서.

제 안에서 숨 쉬시며, 함께 걸으시는 당신을 알아보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