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월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우리 진영('내'편을 고수하는 곳)을 넘어서 나아가기!
하느님의 숨
2025.05.04. 18:49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5월 4일 일요일 - 열아홉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유배의 시기를 살면서도 사랑을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 진영('내'편을 고수하는 곳)이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2020년 가을에 리처드 로어 신부는 히브리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진영 밖에서"라는 표현을 인용하면서 "진영 밖에서 보내는 편지"라고 하는 것을 이따금씩 쓰기 시작했습니다. 리처드는 그러한 입지가 우리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수용소(진영)"에서 나오기를 원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 진영('내'편을 고수하는 곳)이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영 밖에 있는 만남의 장막"(탈출 33,7)이라고 표현했던 자리, 즉 늘 예언적인 자리인 "내부의 가장 자리"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이 장막은 이동 가능한 것이긴 했지만, 우리 앞에서 늘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며,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거룩하신 분"을 만나게 해 주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추악하고 해악한 현금의 정치적 상황 안에서 우리는 한 편으로는 저 "반대편"을 미워하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편을 과도하게 방어하면서 너무나 쉽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생각과 말, 행위를 정당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안을 다른 곳에 투사함으로써 진짜 문제(진짜 악)가 무언지는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진짜 문제(악)를 다루기 더 쉬워 보이는 더 작은 문제(악)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도하게 방어된 에고는 언제나 자기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 안에서 보고, 미워하고, 공격합니다. 그 잘못이 우리 자신의 일부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중요한 도덕적 사안들을 묵과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 종종 옳고 우월하고 통제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구를 내려놓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방어적이고 더 작은 에고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우리를 극도로 커다란 재앙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는 대부분 대상들을 있는 그대로의 그들인 바대로 보지 않고, 우리 식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리처드는 불교의 반야심경이 가르치는 지혜에 대해 성찰합니다:
반야심경(이는 종종 완전한 지혜의 심장이라고도 함)은 많은 이가 불교 가르침의 가장 간결하고 심오한 요약이라고 여기는 경전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반야심경은 우리 모두에게 전해 줄 어떤 도전 같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반야심경은 우리가 찾아내고 경험하기 위해 온 생애를 보내야 할 최종적인 진리를 대담하게 선포하는 만트라로 끝을 맺습니다. 그것은 깨달음 그 자체이고 말로 표현된 희망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현실로 들어서게 하는 궁극적인 해방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반야심경의 산스크리트어를 우리 글로 발음한 내용입니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사바!
가타이, 가타이, 파라 가타이, 파라삼 가-타이 보ㅎ-디이 스바-하!
이를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가버렸네, 가버렸네, 저 멀리로, 존재들의 공동체 전체가 저 멀리 반대쪽으로 가버렸네, 깨달음 - 찬미! 그대로 이루어지이다! [1]
이는 병적인 심리를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비극적인 선언을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기쁨에 찬 선언이며, 이 선언 안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부활 대축일에 외치는 "알렐루야!"와 비슷한 외침이 들어 있습니다. 이 외침은 우리의 비탄과 상실, 슬픔, 그리고 우리의 집착 - 즉 우리가 만들어낸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찬미하는 외침입니다. 이는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일시적으로 존재했다고 지나간다는 것을 슬픔으로가 아니라 "저 다른 쪽 해변"으로의 이동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반대쪽의 해변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기 알지 못하지만, 그곳이 우리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과는 다른 해변이긴 하지만 무서운 심연은 아니라는 것만은 압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제 조국에서 쫓겨나 유배지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다 보닌 제 어린 시절은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삶이었습니다. 강력한 가족의 유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는 예측 가능한 것이 거의 없었고 이런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내려놓음의 삶의 자세를 키워가야 했습니다. 이제 60대인 저는 예측 가능한 것이 사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인생 자체에 매달리려는 우리의 정신을 더 고집스럽게 만들어 주는 거짓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저는 삶의 모든 기대를 내려놓는 수양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이 삶 자체를 정말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며, 모든 존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기 위해 매 순간을 모든 존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더 깊이 인식하고 감사하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Teresita L.
References
[1] See Thich Nhat Hạnh, The Other Shore: A New Translation of the Heart Sutra with Commentaries (Parallax Press, 2017), 115–116, 127.
Adapted from Richard Rohr, Letters from Outside the Camp, November 2, 2020. Unavailable.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Kryuchka Yaroslav, Untitled (detail), photo, USA, Adobe Stock.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존재들은 깨져 버릴 것이고, 우리가 준비되면 우리는 그 깨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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