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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제 3주간 토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부활 제3주간 토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에 의해 회복됩니다!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5월 9일 금요일 - 열아홉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유배의 시기를 살면서도 사랑을 살아간다는 것!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법을 가르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내면에서 질서를 찾고자 하는 근본적인 갈망은 유배와 무질서의 시기에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먼저 질서의 길을 걸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무질서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이 한계가 없는 무한의 바다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세오경의 율법이나 기본적인 법과 정의에 전념하게 될 때 우리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제시한 혼돈 속으로의 과감한 모험을 할 수 있게 되며, 그때 비로소 우리는 위대한 여정으로 인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무질서를 담을 만큼의 충분한 질서가 있어야 하고, 역사의 겁나는 전진을 모두 품을 만큼의 참된 보수주의의 정신이 충분히 있어야 하며, 다른 많은 것을 한데 담을 충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현실의 이 긴장은 우리의 사고를 명확하게 하고 우리의 법을 분명하게 정의하게 해 주며 우리의 인간성을 펼쳐 주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현상을 "십자가의 어리석음"(1코린 1,18)이라고 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하느님께서 최악을 택하시어 '그리스도-인간'을 죽게 하신 다음, 최선의 것, 즉 이 세상의 구원 그 자체를 이루신 곳입니다.

우리는 이 질서가 이전의 방식보다 덜 폭력적이 더 보편적일 때 이 새로운 질서(재-질서)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옛것을 대체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계약이라는 생각할 수도 없는 개념을 우리에게 소개해 줌으로써(31,31-34) 이 재-질서를 향한 도약을 이룹니다.

야훼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내가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니, 나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잘되게 하겠다. 나는 그들의 마음 속에 나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어, 그들이 나에게서 돌아서는 일이 없게 하겠다. 나는 그들을 잘되게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 땅에 그들을 성실하게 심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배의 사건들을 해석하는 보복의 논리와 특전의 논리를 완전히 부수고 나와 유배의 트라우마를 성공적으로 다 겪어낸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을 때 야훼께서 그들을 한층 더 사랑하신다고 선언합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예레 31,3)

예레미야는 어디서 이런 식으로 말할 용기와 자유를 얻었을까요? 오직 하느님만이 그러한 너그러움을 사람에게 심어주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의 신학 이론을 바꾸는 데까지 겪은 내명의 경험이 어떤 것이든, 우리의 신학도 충만하게 바뀌도록 그런 경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소중히 여기신 내면의 "마음" 종교에서 드러나는 외적인 표지에서 나오는 움직입니다(예레 32,39-41). 그러니 우리도 그분께서 기쁨 가운데 약속해 주시듯, 하느님 정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틀로서 복수나 징벌의 개념을 완전히 넘어서 나아갑시다!

용서와 탈출, 유배, 그리고 십가를 거치면서 수양을 한 신실한 종교인들은 이 무조건적 사랑을 향한 여정에 가장 잘 준비가 된 이들임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모든 그룹의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 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이들을 우리는 "성인들" 혹은 "예언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모세와 예레미야, 해리엇 터브먼,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은 언제나 사회의 어떤 큰 사건 이전과 그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그리고 그 사건 이후에도 등장합니다. 그 사건이 재앙이든 역사의 현실을 재-정비하는 주된 사건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났는데, 수십 년 전 저 스스로 유배의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 실패 이후 아이들을 돌볼 수도 없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공허한 습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CAC에서 오는 매일 묵상을 읽으면서 관상이라는 것을 아주 일상적이고 단순한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 땅과 바다, 산, 숲, 우주의 창조주께 말씀을 드리며 다음의 단순한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집니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저에게 이 길 - 이 기도 - 이 참으로 가치 있는 길이요 기도라는 사실을 알도록 용기를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Carol H.

References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Tears of Things: Prophetic Wisdom for an Age of Outrage (Convergent, 2025), 73–76.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Kryuchka Yaroslav, Untitled (detail), photo, USA, Adobe Stock.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존재들은 깨져 버릴 것이고, 우리가 준비되면 우리는 그 깨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라는 초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