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사도 바오로는 피시디아 지방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성경의 구원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주 주제인 예수님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을 유다인들이 죽였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은 유다인들의 성경인 예언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한 채 빌라도에게 사형을 요구하였다고 사도 바오로는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의에 어긋나게 예수님은 어처구니 없게 십자가의 사형이라는 극형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던 사실을 설명하며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사도 13,29-30) 부활 후에 예수님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계속 증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고 제자들은 백성들 앞에서 스승의 부활의 증인이 된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그분께서 살아나신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약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편 2,7)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제자들을 발을 씻어 주신 후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13,26)이라고 하시며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38절)이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배신을 또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제자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곧 스승과 관련해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제자들이 마음이 산란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지요. 그리고 이어서 그들을 위로하며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2-4) 제자들은 스승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중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5절)라고 스승님께 질문합니다. 그런데 스승께서 그에게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6절)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파견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통하여 이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은 사랑하는 당신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시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순명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토마도 제자들도 이 사실을 당장은 깨닫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스승께서 부활하시고 그들과 함께 지상에서 지내시다가 승천하신 후 성령강림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계와 부족함의 조건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한 없이 크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헤아리지 못하고 때로는 조급함과 어리석음을 마치 정의와 지혜로 여기며 함부로 살 때가 많습니다. 내가 보는 것, 내가 판단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이 다 맞는 것이고 중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로 이 어리석음과 온유하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으로 나를 옥좨는 그릇됨을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그들의 발도 씻겨 주시고, 소용도 없는 당부도 해보시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십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스승을 의심 반 감탄 반으로 바라보며 지상의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님께서는 훌쩍 승천하십니다. 스승께서 약속하신 협조자 성령을 받고 나서야 어리석음과 한계로 가려진 스승의 가르침과 삶의 의미를 깨닫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랑의 특징인 스승의 ‘기다림’과 ‘희생’이 제자들의 바탕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즈음은 들뜨고 조급함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 침묵과 고요의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성월의 아름다운 계절에 주님 사랑과 가르침을 새기며 그분의 그윽한 평화에 머무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 |
'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활 제 4주간 금요일 / 반영억 신부님 ~ (0) | 2025.05.16 |
---|---|
~ 부활 제 4주간 금요일 / 송영진 신부님 ~ (0) | 2025.05.16 |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 김동희 신부님 ~ (0) | 2025.05.14 |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 이수철 신부님 ~ (0) | 2025.05.14 |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 이영근 신부님 ~ (0) | 2025.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