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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이수철 신부님 ~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마리아

“자모(慈母)이신 교회”

 

 

 

어제 뽑은 성령 칠은 중, “공경(恭敬;받듦,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받게 하는 은혜)”이란 덕목이 생각납니다. ‘참 아버지’ 대신 ‘참 어머니’로 대체해도 별 문제가 없다 싶습니다. 출신 학교를 모교(母校)라 하고 출신 나라를 모국(母國)이라 부르니 ‘어머니 하느님’이라 불러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 역시 자모(慈母)이신 교회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때쯤이면 20년전 2005년 6월14일 돌아가신 모친 신 마리아도 생각납니다. 요즘 애기똥풀꽃들에 이어 개망초가 한창입니다. 아주 예전 28년전 자작시 개망초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6월 때되면 피어나는 개망초들입니다.

 

 

 

“어느새 훌쩍 큰

개망초

 

 

 

사무친 그리움은

하얀 꽃으로 피어나고

 

 

 

키를 훌쩍

자라게 했나 보다”<1997.6.5.>

 

 

 

어머니에 대한, 고향에 대한, 교회에 대한, 나라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homesick at home)” 역설적 인간 존재의 하느님을 향한 원초적 그리움을 반영한다 싶습니다. 바로 개망초 시를 통해 이런 정서를 표현한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가 나왔겠는지요.

 

 

 

요즘 주변분들과 자주 나누는 이야기 소재는 대한민국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입니다. 말그대로 보석같은 진주같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삼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입니다. 특히 5월, 6월은 신록에 꽃도 새도 많은 계절이라 참 아름다운 ‘어머니 나라’ 같다는 생각을 나누기도 합니다. 오늘 옛 현자 <다산>의 말씀도 인격화된 자모이신 교회의 지혜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천 년을 견뎌온 고전은 평생을 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육경이나 여러 성현의 글을 모두 읽어야 하겠지만 <논어>만은 평생 읽기를 바란다.”

 

 

 

물론 신자들이 평생 읽어야 할 으뜸은 책은 성서입니다. 새벽 인터넷 교황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마음에 와닿은 제목의 레오 교황님 말씀 역시 자모이신 교회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보는 순간 마음에 와닿은 제목의 말마디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내적 쇠사슬을 부숴버리고 우리를 변형시킵니다.”

(The Spirit shatters our inner chains and transforms us)

“하느님은 모두가 하나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God intends all to live as one)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따라 2018년 3월13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회의 어머니” 교령이 발표된 후 교회의 모성애와 진정한 마리아 신심의 성장을 증진하기 위하여 성령강림대축일 다음 월요일에 지내도록 했습니다. 참 의미심장하고 시의적절한 기념일입니다.

 

 

 

오늘 말씀인 창세기와 요한복음도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를 잘 이해하는데 좋은 도움이 됩니다. 창세기의 악마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었던 하와와 그 남편인 아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복음의 마리아와 그 아들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불순종의 하와와 아담과는 반대로, 순종과 섬김, 겸손과 온유의 새하와라 칭하는 성모님, 새아담이라 칭하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예수 아드님처럼 비움의 절정인 마리아 성모님이 계시고 그 옆에는 모든 신자들을 대변하는 신자의 모범인 애제자 요한이 있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우리 믿는 이들 하나하나가 애제자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성모님을 믿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바로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예수님과 그 아래 우리 곁에 있는 마리아 성모님은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자 운명이 됩니다. 요한처럼 애제자의 신분인 우리들이라면 십자가 예수님의 마지막 화두와 같은 임종어도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

 

 

 

참으로 마리아 성모님의 모성애를 닮은 교회요 우리 신자들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2018년 5월21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할 때 교황님 강론이 공감이 가고 저절로 웃음짓게 합니다. 중요한 내용을 인용하여 나눕니다.

 

 

 

“‘교회는 여성적이다,’ ‘교회는 어머니다.’ 교회의 이런 정체성이 상실되면, 교회는 ‘하나의 자선단체나 축구팀’이 되고 맙니다. 남성적인 교회가 될 때, 슬프게도 사랑할 수도 없고 출산할 수도 없는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노총각들의 교회가 되고 맙니다.

 

 

 

교회가 여성이고, 신부요 어머니인 이러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없이 교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여성적인 태도는, 교회의 모성애는 마리아 성모님에게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입니다. 침묵할 줄 알고, 연민 가득한 눈길로, 조용하게 어루만져주는, 수많은 지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어머니입니다. 또한 사랑이 넘치며 웃음을 머금고, 따뜻한 애정과 부드러운 온유의 사랑으로서, 어머니의 길을 똑같이 걸어가야 하는 교회임을 자각하면서, 자모이신 교회에 속한 자녀들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지의 감동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러니 자모이신 교회요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하신 자모이신 마리아 성모님을 닮아갈 때 저절로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교회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사랑하여 닮아가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