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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11 주간 화요일 / 이영근 신부님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 8,1-9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2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3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4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5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티토에게, 여러분에게서 이미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마저 끝내라고 권하였습니다.
7 이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8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열성에 견주어 여러분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의로움>


오늘 복음은 마지막 여섯 번째의 새로운 의로움으로, ‘완전한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넘어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웃과 원수를 구분해서 처우를 달리 해온 그동안의 관행을 완전히 뒤엎어, 이웃이나 원수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원수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또는 우리 자신에게서 미움을 없애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혹은 단지 사랑에 한계를 두지 말라는 것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모두를 ‘있는 그대로’를 ‘호의로’, ‘자애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부족한 이를 부족한 채로, 원수를 원수인 채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한 채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아가서는, 그가 부족하기에, 바로 그 이유로 더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가 사랑이 더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죄인이기에 처벌받아야 하기보다 용서받아야 할 대상이듯이 말입니다. 

동시에 이는 자기 자신만 구원받아야 할 존재인 것이 아니라, 타인도 구원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우쳐줍니다.

자기 자신만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타인도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에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덧붙이십니다. 

‘사랑’은 애당초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테파노가 돌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사도 7,60), 사도 바오로가 고난을 겪으면서도 박해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1코린 4,12),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잘 해주고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죄는 짓지 않을지 몰라도 의로움을 행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친구가 아닌 원수를 사랑할 때라야 의로움을 행하게 됩니다.


악을 피하는 것을 넘어 ‘선’을 행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의로움’은 단지 죄짓지 않고 무난하게 살기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 13,9-10)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주님!
단지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그에게도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내가 기도해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나의 기도가 가장 필요한 사람, 나를 힘들어 하고 있지만 나의 사랑이 절실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