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기도와 삶
“기도가 답이다”
지구촌 곳곳이 전쟁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어제 삼종기도후 레오 교황님의 강론시 세계 지도자들에 대해 언급한 대목도 귀한 깨우침이 됩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를 연상케 합니다.
“전쟁은 언제나 패배다! 어느 것도 평화로 잃을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전쟁으로 잃을 수 있다.”(War is alwaysa defeat! nothing is lost with peace; everything can be lost with war)
이래서 나쁜평화가 좋은전쟁보다 백배는 낫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우선적 책무는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망으로 마비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Let us not be paralized by disappointment)
결코 실망, 절망, 원망의 삼망에 의해 마음이 마비되는 불행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래서 한결같은 기도와 일의 균형과 조화의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성 로무알도 아빠스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951년 이탈리아의 라벤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하느님을 찾는 일에 전념했던 기도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까말돌리 연합회>에 속하는 가말돌리수도회의 창립자로 베네딕도 규칙을 근간으로 공동생활과 은수생활을 결합시킨 수도성인입니다. 이상적인 수도생활방식은 공동체생활과 은둔생활이 조화롭게 결합된 형태로 형제적 친교를 나누면서도 은수처의 독방안에서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으면서 완전한 금욕생활을 실천하는 수도자들입니다.
높은 완덕의 경지에 이른 성 로무알도는 1027년 6월18일 바로 오늘 발 디 카스트로 은수처에서 모두를 물리치고 문을 닫은 후, 고독과 침묵속에서 하느님의 품에 안겨 선종합니다. 만76세에 선종하셨으니 바로 제 나이입니다. 1032년 복자품에, 1595년 클레멘스 8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니 교회의 조처가 고맙습니다. 평생 베네딕도회의 모토대로 ‘기도와 일’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삶을 살았던 수도성인입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합니다. 기도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이 맹신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와 삶이 하나된 삶이 평범하나 비범한 삶이요 성실한 삶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성실함이 비범한 인생의 조건이다.”<다산>
“평상시 말할 때는 믿음을 주고, 행동할 때도 간특함을 막아 그 성실함을 보존해야 한다.”<주역>
살기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한결같이 숨쉬듯 기도해야 합니다. 이래야 성실함도 보존됩니다. 나중 남는 얼굴도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주님 앞에 갔을 때도 당신을 닮은 마음의 얼굴들인지 검사할 것입니다. 어디는 기도하라 눈들면 하늘이요 나무처럼 직립의 사람들입니다. 오래전 수도원 성당 창밖의 바람에 휘날리는 무수한 나무잎들을 보며 쓴 글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기도는 저렇게 하는 거다
하늘안, 하늘향한 눈부신 떨림, 나뭇잎들처럼
성령충만, 떨리는 기쁨
초록빛 온몸, 온맘으로 하느님 찬미, 하느님 사랑
기도는 저렇게 하는 거다
웬만한 병 다 낫겠다”<2010.6. >
역시 언제나 하늘 향한 정주의 나무들은 기도의 스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한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영감에 찬 기도가 아니라면 기도는 짧고 순수해야 한다 하셨는데 예수님 역시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는데 왜 기도하는가? 우리가 필요하고 아쉬워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존된 가난한 한계내 존재임을 깨달아 겸손하게 만들며, 무엇이 정작 필요한지 깨닫게 함으로 결국은 하느님의 뜻에 일치된 삶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깨달아 앎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참나의 사람들로 만들어 주는 기도입니다.
기도중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노하우가 담긴, 예수님의 평생 삶이 담긴 주님의 기도입니다. 허영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본질적 깊이의 참나를 살게 하는 참 단순하고 가난하고 겸손한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인간 삶의 모두를 망라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 일방적으로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최선을 다해 협조, 협력해야 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듯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가사 역시 국민들의 최선을 다한 협력의 응답이 있을 때 비로소 성취되는 대한민국 만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기도 전반부 셋은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이 중심을 이룹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며 아버지의 자녀들인 우리는 모두 서로 형제가 됩니다. 인류가 평등한 하느님의 가족에 속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아버지의 자녀답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도록,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도록,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니 평생 기도와 더불어 하느님 공부와 주님의 기도 공부가 절대적입니다. 사랑처럼 평생 배워야 하는 기도이기에 기도에도 우리는 영원한 초보자입니다. 이어지는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일용할 양식, 잘못한 이들에 대한 용서, 유혹에 빠지지 않음, 악에서 구해달라는 청원등 모두가 우리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의 협조가 필수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용서하기 위해, 유혹이나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의 깨어 노력하는 일이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우선 용서의 경우, 주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형제들에 대한 용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체화하여 살았던 모범적 인물,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 신도들에 대한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걸고 말하는데 아무도 나의 이러한 자랑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아십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끊임없이, 한결같이 주님의 기도를 생활화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닮는, 아버지의 효성스런, 훌륭한 자녀가 되는 첩경의 지름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영성체전 바치는 주님의 기도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도움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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