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목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여러분의 기쁨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기쁨과 회복 탄력성
영적인 삶 안에서 기쁨은 슬픔과 행복을 다 끌어안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신비주의자이자 신학자인 하워드 써만(Howard Thurman: 1899-1981)은 기쁨을 위한 가장 안전한 토대로서의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자기들의 행복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좌지우지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기쁨이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무미건조한 상황에서도 기쁨을 쥐어짜내거나 슬픔의 상황이 엄청나더라도 거기서 기쁨을 억지로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 체험 가장 깊은 곳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쁨은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좌지우지되거나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삶의 모든 우여곡절과는 별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쁨이 주는 경이로움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성령의 깊고도 차분한 물의 흐름을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현존을 알려 주실 때 거기에는 어떤 말도 없고 겉으로 들리는 노랫소리도 없고, 오직 하느님의 신성한 움직이심만이 감지되는데, 우리 영혼이 이것을 가장 먼저 발견해 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에 슬픔을 가져다주고 우리 영혼에 피로를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에서 우리를 한결같이 지켜주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간다 해도 우리를 위로해 주고 동반해 주는 기쁨입니다. [1]
가톨릭 사제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1931-1996)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을 통해 경험하는 기쁨에 대해 말합니다:
기쁨은 우리가 슬플 때에도,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우리 삶이 힘들게 다가올 때에도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기쁨은 아주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존재하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그런 기쁨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 기쁨이 우리의 슬픔과 행복, 고통과 만족을 다 끌어안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기쁨은 더 깊고 더 충만한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더 큰 것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머무는 그 무엇입니다. 이는 하느님 존재 자체 안에 있는 매우 심오한 그 무엇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아주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더라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만일 교회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하느님의 기쁨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가르침일 겁니다. - 병 중에 있어도, 건강한 상태에 있어도, 실패를 경험하고 있어도, 탄생의 순간에도, 죽음의 순간에도... -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에게서 절대 떠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기쁨의 현존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고통 안에 숨겨진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 기쁨을 접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삶 - 즉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 - 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접촉하는 것이고, 이 사랑과의 접촉을 통해 우리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변화무쌍한 상황 저 밑에는 기쁨이라고 하는 깊고도 견고한 하느님의 선성한 흐름이 있습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품을 받은 사제이지만, 35년 전에 사제직을 떠났습니다 저는 34년 전에 제 동성 동반자를 만나 함께 우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이제는 제가 공적으로 교회의 성무를 집행할 수는 없지만 저는 영원히 사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요즘 저는 페이스북이나 다른 웹사이트에서 매일 영적인 성찰을 나누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 과거로부터 온 아픔과 고통은 제 마음과 영혼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사제직을 떠난 저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제가 공적으로 사목을 할 수 없다는 공허함은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사랑 가득한 손길을 부여잡고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어 어떤 식으로든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Roberto J.
References
[1] Howard Thurman, Deep Is the Hunger: Meditations for Apostles of Sensitiveness (Friends United Press, 1978), 160–161.
[2] Henri J. M. Nouwen, Following Jesus: Finding Our Way Home in an Age of Anxiety, ed. Gabrielle Earnshaw (Image, 2024), 102, 103, 104, 105.
Ya' Wahyu, untitled (detail), 2024,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두 아이가 햇빛에 덥혀진 물을 서로 튀시고 있습니다: 저 모든 물방울과 물결이 기쁨의 빛을 발산해 주고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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