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몇 년 전, 어느 본당으로 강의 갔다가 아주 곤란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급하게 강의 장소로 가고 있었는데, 중요한 무엇인가를 두고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강의 원고였습니다. 물론 강의 때 원고를 잘 보지 않지만, 원고가 없으면 때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에 원고를 반드시 손에 들고 강의합니다. 그런데 이 강의 원고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강의 시작 1시간 전에 강의 장소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에 곧바로 편의점으로 가서 펜과 노트를 샀습니다. 그리고 근처 카페로 가서 강의 내용을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아무런 문제 없이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 뜻밖의 상황은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당황스럽고 힘듦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때 그냥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편한 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든 길은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행동하는 것이 됩니다. 무엇이 변화를 불러올까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족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나라입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그 기도의 필요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서로 적대시하면서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함께해야 한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아무런 노력 없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 뜻은 뒤 이어 나오는 용서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면서 무한한 용서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을 보내며 바치는 우리의 기도는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면서 단정하면서 하는 기도를 통해서는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하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함께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에게 물어보라. 난 지금 무엇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었는가를(잭 캔필드).
사진설명: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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