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목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보살핌의 공동체!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23일 수요일 - 스물다섯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변화의 공동체를 창조하기
서로간에 배려하는 관계성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랍비 샤론 브로스(Sharon Brous)는 의미가 충만한 공동체의 중심에는 개개인에 대한 보살핌과 서로에 대한 배려의 관계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상호 배려의 관계성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배려심을 갖고 우리 마음에 소중히 간직할 사람들이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들이 잘못해도 그들을 용서하고자 하고, 그들도 우리를 똑같이 대해 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힘든 순간들은 물론이고 기쁨의 중대한 순간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함께할 때 우리는 번창하며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향해 이루어진 관계성은 서로에 대해서뿐 아니라 같은 꿈을 나누고자 하는 상호간의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만일 최선의 장소가 상호 배려와 공동 목적의 교차점이라면, 저는 그 교차점에 자리 잡은 공동체에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모든 예식과 모든 봉사, 모든 함께함을 서로간의 연결됨을 심화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런 공동체는 사람들을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는 개개인이기도 하고, 또 상처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개개인이라고 여기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위대한 전체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종류의 공동체는 "당신은 어디에서 일합니까?"라는 질문보다는 "당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의해 추진력을 받습니다... 이런 종류의 공동체는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노래하고 슬픔을 나누고 배우고 성찰할 정기적인 기회를 자기들의 영적인 닻으로 삼습니다. 이런 공동체는 더 넓은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의의 사람들의 집단적 힘을 인식하고 거룩한 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닦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들을 자기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서로간의 소속감과 친밀감, 진실함, 사랑, 그리고 책임감을 키워주는 신성한 공간을 창출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1]
우리 문화에서 수많은 사람이 겪는 집단적 외로움과 절망을 인식하면서 브로스의 공동체는 사람들을 그들이 있는 곳에서 만나는 데 더 심오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랑과 소속됨의 신학을 설교하는 일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들이 그 계명을 반드시 끌어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해온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멘' 효과입니다. 특히 힘든 날에에는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를 포용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신성한 계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에게 "아멘"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신성한 수치와 상처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게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단절과 외로움, 암울함, 불안과 중독 등에 대해 진솔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과 소속감이 있는 공동체는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에도 우리가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 공동체가 우리를 감싸주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함께 걸어가기 시작하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과학적 데이터와 영적인 통찰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단절은 우리 사회를 갉아먹은 어둠의 전염병입니다. 이에 대한 해독제는 풍요롭고 의미 깊은 연결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에제르케네그도(ezer k'negdo: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최초의 조력자 여성에 대한 히브리어) [2] - 즉 관심과 배려로 우리의 연약함을 채워주는 사람, 밤새 우리와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 참호 속에서 우리와 함께 몸을 숙여 머물러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사랑으로 열심히 일해 줄 사람입니다. [3]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최근에 흑인 모세와 테오도라와 같은 사막의 많은 교부들과 교모들이 아프리카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보고 자라왔던 많은 영성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와는 달리 피부색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 공동체들에 사는 신비주의자를 다시 상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계 어린이였던 저는 이와 같이 사막의 금욕주의자들, 즉 예수님께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저와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동체를 희망했었습니다. 만일 제가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예수님과 같은 비현실적인 이미지에 예배를 드리라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리스도교를 얼마나 다르게 경험했었을까요? 저는 이 전설적인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들려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치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편협한 미국의 종교 이야기들을 지적해 주는 의미심장한 반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Roberta T.
References
[1] Sharon Brous, The Amen Effect: Ancient Wisdom to Mend Our Broken Hearts and World (Avery, 2024), 39, 41–42.
[2] Ezer k’negdo is the Hebrew word found in Genesis 2:18. 이 말은 주로 조력해 주는 협력자로 번역되지만, 본래 의미하는 바는 다른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외면하는 때에도 여러분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k’neged lo)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an ezer)입니다(Brous, 35–36).
[3] Brous, Amen, 44–4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Joel Muni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코로나 팬데믹 시가에 푸드 뱅크에 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연대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 나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조용하게 상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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