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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 송영진 신부님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강론> (2025. 6. 27. 금)(루카 15,3-7)

 

복음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철이 들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모두 ‘사랑’입니다.

인간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는 목자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고, 집 나간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도 예수님의 마음입니다(루카 15,2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비유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은 곧 ‘사랑’입니다. ‘가장 큰 계명’에 관한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잘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나를(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십자가와 성체성사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신앙인은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먹고,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되찾은 양의 비유’에 나오는 ‘잃은 양’은 목자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그 길을 알지 못해서 헤매는 양입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것은, 내버려두면 그 양이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양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양이 스스로 목자를 떠난 것이라면, 그 양은 ‘잃은 양’이 아니라 ‘떨어져 나간 양’입니다. ‘스스로 떨어져 나간 양’은 결국 ‘버림받은 양’이 됩니다. 목자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버림받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처음에는 ‘잃은 양’이었고, 나중에는 ‘되찾은 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잃은 양’이었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고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작은아들은 집으로 오는 길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아는 길이니 그 길로 되돌아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 선포와 선교활동은, 구원의 길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그 길을 알려 주는 일입니다.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길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에게는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큰아들의 경우에는, 아버지는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아들을 찾아 나섰는데, 그것은 큰아들이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잃은 양’이고,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것처럼 아버지도 그 아들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었습니다.

3) 냉담자 중에는 ‘되찾은 양의 비유’를 언급하면서, 사목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또는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냉담 중이라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그런 오만한 태도는 회개와는 거리가 먼 위선입니다. ‘잃은 양’은 회개하고 있거나 회개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회개는 목자에게 되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겸손’을 바탕으로 한 일입니다.

4) 구원이 완성되었을 때, 가장 크게 기뻐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크게 기뻐하는 것을 보시면서 당신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고,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기쁨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구원받으려고, 내가 살고 싶어서, 내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을 주님에게나 사람들에게 생색낼 이유도 없고 자랑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당신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일은 다 ‘나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내가 회개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 자신이 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이게 다 너를 위한 말이다.” 라고 훈계할 때가 많은데 그 말은 확실히 진리입니다. 철이 든 자식은 그 말을 알아듣고 순종하지만, 철이 안 든 자식은 그냥 ‘쓸데없는 잔소리’ 라고 생각합니다.

철이 든 신앙인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철이 안 든 사람은 하느님과 예수님께 뭔가를 바치면 바친 만큼 복을 받는다는 생각만 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의 큰아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그렇게 철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