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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스크랩] 일본이 보물로 지정한 고려청자

일본이 보물로 지정한 고려청자

 

 

아마도 21세기를 기록할 미래의 역사책 서막에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피로 얼룩진 인류 문화의 파괴 행위라고 기록할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책에는 국립이라크박물관의 약탈을 방관한 미국을 문화 유산의 파괴 원흉이라고 반드시 명기할 것 입니다.

국립이라크박물관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의 보고입니다. 하지만 전쟁 중 많은 문화재들이 미군의 방관으로 약탈됐고, 전시 유물 1만3500여점 그리고, 지하 창고에 수장되어 있던 30여만 유물 중 17만여점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과연 미국이 이 문화재들을 보호할 힘이 없었을까요? 문화재가 약탈 당할 때 미군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라크 내 석유 관련 시설은 완벽하게 보호했습니다.

종군기자를 비롯한 미국과 영국의 언론인들이 이라크 문화재를 전리품으로 챙겨 나오다가 세관에서 적발되었을 때 미국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는 '오랜 관행(전리품)'이라며 두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명의 증표인 유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역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외침을 겪은 우리 나라는 어떨까요? 슬프게도 우리 나라도 이라크처럼 많은 문화재가 국외로 유출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도자기 문화재이며 이렇게 유출된 문화재는 일본에 가장 많이 있습니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은 현대 사회가 원시 사회로 회귀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가 비록 외국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문화재의 현주소와 역사, 미학적 가치를 알고 있어야만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국보와 보물, 2단계로 우리 문화재를 구분합니다만, 일본은 국보와 중요문화재, 중요미술품 3단계로 구분합니다. 중요문화재와 중요미술품은 우리 나라의 보물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우리 나라 문화재를 보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왜정 시대의 일본인들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나 왜정시대에는 조선 문화재를 보물로는 지정하기는 했지만 국보로는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식민지 조선의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한다는 것이 그 당시 일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본에 유출되어 일본의 보물이 된 우리 고려 청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좌) 청자상감 쌍봉문 화장상자. 일본의 중요미술품 .아타카콜렉션 (동양도자 미술관). 우) 청자인화 용문방형 향로. 일본의 중요미술품. 아타카콜렉션.
ⓒ 아타카 콜렉션
왼쪽의 장방형의 함은 여자들의 화장 도구를 넣는 함입니다. 아주 드문 형태이며 자료적으로도 아주 귀중합니다. 유색이 아름답고 봉황문을 중심으로 문양이 우아합니다.

오른쪽은 12세기의 제기용 향로였으며 형태와 문양이 중국의 청동기를 흉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 시대부터 우리 나라의 제기가 중국의 청동기 제기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향로의 유색은 중국 청자의 비색(秘色)보다는 훨씬 깊은 비색(翡色)입니다.비색(翡色)이란? 옥처럼 맑은 색을 말합니다.

▲ 좌) 청자 동녀형 연적. 일본의 중요미술품. 아타카콜렉션. 중) 청자음각 연화문 삼이호. 일본의 중요미술품. 아타카콜렉션. 우) 청자백지음각 초화문 주자. 일본의 중요미술품. 아타카콜렉션.
ⓒ 아타카 콜렉션
왼쪽은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의 작품입니다. 화장 도구로 추정됩니다. 이 동녀상으로 그 당시의 의복을 알 수 있으며, 머리 형태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적 미감이 잘 녹아 있습니다.

가운데는 가는 선으로 조각된 문양이 극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뚜껑과 같이 전해 내려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오른쪽은 청자의 문양을 새기는 기법 중 아주 재미있는 것을 쓰고 있습니다. 하얀 화장토를 칠한 뒤 자토(구운 뒤 까만색이 되는 흙)로 위에 간단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문양이 이 도자기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 좌) 청자상감 동자보상화당초문 주자. 일본의 중요문화재. 아타카콜렉션. 중) 청자 구룡 정병. 일본의 중요문화재. 대화문화관. 우) 청자 연당초문 정병. 일본의 중요문화재. 네즈미술관.
ⓒ 내용참조
▲ '도원' 이중섭 작품
ⓒ 이중섭 미술관
왼쪽은 우리 나라 근대화가 이중섭 선생이 제주도에서 그린 <도원>(옆의 그림 참조)이 연상되는 청자입니다. 꿈에서 본 듯한 아름다운 정경을 정감있게 잘 표현했습니다.

가운데는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을 향해 웅비하는 모습이 잘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청자는 청자의 최전성기의 작품입니다. 전라남도 강진군의 가마에서 구워졌다고 추측됩니다.

오른쪽은 정병입니다. '정병'이란 부처님에게 물을 올리는 불구(佛具)인데 고려 시대에는 주전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형태로 된 동으로 만든 정병도 있습니다. 조각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고려 시대의 청자들이 문화재로 지정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유네스코가 문화재 환수에 대한 협정을 발표하고 난 뒤에 지정됐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유네스코는 문화재 환수에 관해 1970년 '문화재의불법반출입 및 소유권양도의금지와 예방수단에관한 유네스코 협약' 1995년 '도난또는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반환에 관한 UNIDROIT 협약'을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강대국은 협약을 준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나라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던 일본인이 자신의 소장품을 한국 정부에 기증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일본 문화계 인사들이 그 소장품을 아주 급하게 중요미술품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면 일본의 국가적 보물이라 해외에 절대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 소장품을 한국으로 가지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사진에 있는 청자를 소장하고 있는 곳 중에서 아타카콜렉션(동양도자미술관)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 미술관에는 '이병창 기념 도자 자료실'이 특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병창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였으며 일본 영사관의 영사로 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일본에 눌러 앉아 교포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일본 내의 한국 도자기를 수집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한국 도자기는 질적, 양적으로 아주 대단한 것 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아타카 콜렉션에 기증했습니다(1995년). 그 당시 아타카 콜렉션에서는 총 793점의 한국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병창씨가 기증한 양은 총 351점(한국 도자기 301점, 중국 도자기 50점)으로 아타카가 소장하고 있던 한국 도자기의 40%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문화재들의 관리하기 위한 비용을 대기 위해 자신의 토지와 건물까지도 아타카에 기증했다 합니다. 그는 이렇게 일본의 미술관에 한국 도자기를 기증한 이유로 일본에 있는 교포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 였다고 말했습니다.

필자는 이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한국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우리 나라의 많은 문화재가 외국에 유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이라면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으로 가져 와야 합니다. 그런데 영구히 못 가져 오도록 일본 미술관에 기증한 당신의 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현존하는 고려 청자들은 전해 내려 온 것들이 아니라 대부분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입니다. 지금 필자의 귀에는 무덤의 주검이 자신의 물건을 돌려달라는 안타까운 절규가 들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병창 콜렉션' 중 몇 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두 고려 시절의 명품입니다.

출처 : 일본이 보물로 지정한 고려청자
글쓴이 : 청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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