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김원숙, ‘좋은생각’ 중에서)
며칠 전부터 오빠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홀로 칠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엄마. 그런 엄마와 싸우는 오빠에게 대들다가
나는 뺨을 맞아 오른쪽 청각을 잃었다. 결국 나는
오빠에게 등을 돌렸고 남편 따라 미국에 온 뒤로는 남이 됐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오빠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가 가는 동안에도 별 생각이 다 스쳤다. 이내 힘없는 오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해서 오빠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어색한 대화가 오간 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오빠가 말했다. “지금까지 너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부디 용서해다오.”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나도 잘한 것 없어요. 오빠... 목소리가 안 좋은데
건강 잘 챙기세요.”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허탈했다. 40여 년 만에 듣는 오빠의 사과가 내 마음의 상처를 다 치유할 수는 없었다.
전화한 것을 후회하는 한편 약해진 오빠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며칠 뒤 올케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고마워요. 고모한테 전화 받은 다음 날 오빠
편안하게 가셨어요. 위암으로 고생하셨거든요. 오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늘 고모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짧은 대화가 지상에서 오빠와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니,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얼마든지 한쪽 귀로도 오빠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후회로 가슴이 미어졌다. 이미 끊어진 수화기에 대고 나는 울며 말했다.
“오빠 정말 미안해. 나도 용서해 줘.”
Paul Cardall - After the Storm |
'아름다운글과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中年에 남몰래 흘리는 눈물 (0) | 2009.01.11 |
---|---|
[스크랩] 사랑의 아픔 (0) | 2009.01.11 |
[스크랩] 내 소중한 사람에게 (0) | 2009.01.11 |
[스크랩] 본 적은 없어도 행복을 주는 사람 (0) | 2009.01.11 |
[스크랩] 그리운 아버지 (0) | 2009.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