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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갈멜 산의 성모님

아래의 글은 오'래버티 신부님(Fr. H. O'Laverty)께서 쓰시고(1915), Tan Books & Publishers에서 출판한(1987) "하느님의 어머님과 그분의 영예로운 축일들 (The Mother of God and Her Glorious Feasts)"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Imprimatur는 벨기에 브루지(Bruges, Belgium)의 반 데르 메르쉬 주교님(Most Rev. J. Van der Meersch)께서 주셨습니다 (1925년 6월 27일)


 
- Mary's Touch By Mail, 2000년 5월 10일

 

갈멜 산의 성모님
(Our Lady of Mount Carmel)


       두 가지의 이유로써 마리아께서는 "갈멜 산의 성모님"이라고 불리우신다.  첫째는 마리아께서 전 세계의 갈멜 수도회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이다.  성모님께서는 성 시몬 스탁(St. Simon Stock)에게 갈멜 회에 대한 당신의 특별한 보호를 약속하시면서 갈색 스카풀라(the Brown Scapular)를 주셨다.  그리고, 그 스카풀라를 걸고 임종하는 사람은 지옥의 고통을 면하게 될 것임도 약속하셨다.  둘째는 마리아께서 내적 생활(the interior life)의 모범이시기 때문이다.  내적 생활은 자주 은둔 생활과 혼동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매우 숨겨진 생활을 하며, 공중의 눈에 띄기를 전혀 원치 않지만, 내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삶은 외적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매우 멀리 계신다.

      내적 생활은 하느님과 일치된 생활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활동적이고 외적인 일에 몰두하며, 그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인다.  그들의 외적 활동은 자연적 활동에 불과하며, 초자연적 상급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까지도 내적 생활의 은총과 하느님과의 친밀한 결합이 없다면, 그들이 수행하는 일이 거의 공로가 되지 못할 것이며, 초자연적인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일생의 3년만을 공적 활동을 위해서 보내셨다.  그 3년 간에도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내셨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 받으시고 죽으시는 것이 강생의 주요 목적이었다.  예수님의 모든 행동들이 가치를 띄게 한 것은 그분의 내적 성성(聖性)이었다.  우리는 내적 생활을 포도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가지가 줄기로부터 수액(樹液)을 빨아 올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같은 방식으로, 만일 우리가 우리 주님과 일치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하는 일들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이는 뛰어난 지성과 높은 교육 수준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구령 사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그들의 온갖 수고들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얻지를 못하며, 그들의 모든 지식은 지나가는 공허한 찬사들을 받거나, 세상의 재물을 끌어모으는 데에나 쓰일뿐, 참으로 가치있게 쓰여지고 있지 않다.

        마리아께서는 내적 생활의 모범이시니, 그분께는 세속의 눈으로 판단할 때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으시다.  그분께서 하신 일들은 가정 주부들이 하는 평범한 매일의 의무들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분의 행동들에서 특이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갈바리아 산 위에서 돌아가실 때, 마리아께서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고통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이러한 역할이 군중들 사이에서 돋보여 보이지는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죄인으로 저주받은 이의 어머니로서 많은 모욕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십자가 옆에 서 계시면서 당신께서 받으신 온갖 모욕과 내적인 적막함과 고뇌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봉헌하셨다.  마리아께서 나자렛에 계실 때, 그분께서 어떤 고귀하심에로 올림 받게 되실지 아무도 상상 못하였다.  세상의 견지에서 볼 때, 그분께서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서 가장 하느님께 가까우셨으며, 전대미문의 특전과 은총들을 받아 계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셨으며, 이 호칭은 그분께 하느님 자신께서조차 순명하시는 권위가 부여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 어떠한 묵상의 제목인가, 그리고 우리가 마리아께 드리는 공경이 하느님께서 친히 그분께 부여하시는 것에 비할 때 얼마나 초라한가!  모든 착한 자녀들이 그들의 어머니께 순종할 것이며, 부모는 자녀들로부터 순종과 공경과 사랑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로부터도 존경과 사랑과 순명을 받으실 수 있으시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권리와 특전들을 받아 계셨으나, 그분의 생활에서는 여하한 외적으로 특별한 특징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번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분께서는 기적을 가져오게 하는 당신의 지위를 사용하셨으며, 이것은 애덕과 친절의 행위를 수행하기 위함이셨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도, 아무도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높으신 위엄과 거룩함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다.

        내적 생활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자주 제대로 이해되어 있지 않다.  하느님과 밀접히 일치되어 있는, 숨겨진 내적인 영혼들은 구원 사업에 있어서의 주요 도구들이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감독하고 공과 찬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은총들의 토대이며 주요 원천이 되는 이들은 대체로 숨겨져 있으며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도록 불림받은 이들이 내적 생활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 때문에 그들의 활동이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으며, 또한 그들의 모든 외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영혼들에게 큰 손해를 끼쳐주고 있다.  해마다 들풀들이 죽는 것은 그 뿌리가 지표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떡갈나무와 무화과나무 등은 그 뿌리가 깊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살 수가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활동과 우리의 덕행들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은총에 의한 내적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되며, 시련과 유혹의 폭풍이 올 때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피상적인 경건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온 세상에서 마리아만큼 하느님께 가까우신 분은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의 찬사를 받지 못하셨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친구들조차도, 아마도 성 요한을 제외하고, 마리아의 영혼의 높으신 성성과 구원 사업에 있어서의 그분의 중요성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고귀하심과 그분의 비할 바없는 성성의 비밀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그분의 내적 생활이었다.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서 내적 생활이 전부임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어째서 갈멜회가 마리아의 특별한 수도회이어야 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혼들의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게 됨으로써 성취된다.  예수님의 수난에 의해서 교회는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며 연옥의 모든 영혼들을 구제할 수 있는 보물로 가득차 있다.  유일한 문제는 이 은총들을 우리 자신들의 영혼들과 다른 이들의 영혼들에게 가져다 주는 일이다.  내적인 영혼들은 먼저 자신들을 성화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은총들을 가져다 주는 일을 할 수 있다.  성인들의 통공(通功)은 지상의 신자들과,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과, 천국의 성인들이 서로 도와줄 수 있음을 뜻한다.  이 세상의 내적인 영혼들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대단히 많은 은총들을 얻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애덕을 실천하게 되며, 따라서 자신들의 성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모든 활동들 중에서 가장 애덕에 넘치며 공로가 되는 것은 영혼들의 구원에 협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적인 영혼들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풍만한 은총들을 얻어줄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 거룩함의 토대이시며, 성체 성사가 영혼들을 위한 모든 은총들의 근원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복되신 성모님께서는 성화를 이루는 사업에 있어서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  그분께서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성인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일들은 거의 하지 않으셨으며, 그분의 내적 생활은 그분의 모든 활동에 모든 순교자들과 모든 증거자들이 수행한 어떤 행위보다도 더 뛰어난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 모든 것이 그분의 내적인 성성으로부터, 즉 그분 영혼 안의 은총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성모님께서 십자가 밑에서 착한 도둑을 위하여 기도드리셨을 때, 그 기도가 허락되었으며, 성모님께서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을 위하여 기도드리셨을 때, 그들 중의 다수가 회개하였다.  어떤 이들이 말하기를 마리아께서는 갈바리아에 계셨으나, 우리는 그런 특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지만, 이는 맞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사가 갈바리아의 희생 제사의 재현이며, 우리가 미사에서 마치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옆에 실제로 있는 것과 같은 효과로써 기도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께서는 그분 생애의 매 순간마다 은총에 있어서 성장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시면서도 그분 의향의 순결함을 가지고 묵상하셨으며, 당신의 모든 일을 하느님께의 사랑으로 봉헌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님께 젖을 먹여 기르셨다든지, 나자렛에서 일하셨다라고 하는 행위 자체만으로써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의향으로 행하셨으며, 당신의 활동들을 기도와 묵상으로써 성화하셨다.  묵상 생활을 할 수 없고, 외적 의무들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조차도 그들의 가장 미소한 선행들까지도 이를 선한 의향으로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자신을 성화할 수 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생애 전체를 통하여 하느님의 성의(聖意)와 일치하여 행동하셨다.  하느님께서 에집트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 즉시 순종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순명의 공로와, 예수님의 생명을 보호하는 공로를 세우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내적 생활을 가꾸어 나가는 이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다.  마리아께서는 아름다운 지성을 가지셨으며, 그분께 접근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함 자체이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성의를 실행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임을 아셨으니,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참으로 유익한지를 아시며, 우리에게 온갖 은총들과 축복들을 주실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마리아께서는 항상 하느님의 성의와 완전한 일치 속에서 생활하셨으며, 하느님께서 그분께 십자가들과 시련들을 보내실 때에는, 그 십자가들을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봉헌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더욱 성화하셨다.  마리아처럼 내적 생활을 가꾸는 이들은 하느님의 성의에 완전히 부합되며 십자가들과 반대들 밑에서 인내함으로써 성성의 지극히 높은 곳에까지 올려지게 된다.  이러한 내적인 영혼들은 성모님처럼 그들의 기도와 희생들을 통하여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주 많은 은총들을 얻어주게 된다.  

        당신 생애의 마지막 가까이 가서, 마리아께서는 성체 성사에 대한 신심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에 더욱 진보하셨다.  그분은 매일 영성체로써 예수님을 모셨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감실 앞에서 성체의 주님께 흠숭드리심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이 천상 양식과 예수님과의 오랜 대화는 그분의 내적 생활의 성성의 절정을 이루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쓸모가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마리아처럼 내적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지금 성체 성사는 이 내적 생활을 양육하는 음식이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 안에 생명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성화 은총(Sanctifying Grace)의 내적 생활을 말한다.  내적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성체 성사의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랑의 포로가 되신 분을 방문하는 동안,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성체로써 우리를 방문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과 대화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릴 줄 알아야 하며, 그분께 우리의 모든 필요들과 원의들을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내적인 생활은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말로써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분께 말씀드릴 때에는 엄마에게 정답게 말하는 아이와 같은 사랑에 찬 친숙함으로써 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말씀이 정연(整然)해야 할 필요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그분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스런 포옹을 해주실 것이며, 당신의 비밀들을 알려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많이 바치기를 원하시며, 그분께 우리의 작은 희생들을 바쳐드림으로써 이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으시도록 해드리기를 원하신다.  죄인들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호의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죄인들을 위하여 작은 희생들과 기도를 드릴 때, 주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은총을 넘치도록 퍼부어 주시어 그들이 주님의 호소를 저항할 수 없도록 하실 수 있으시다.  오,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내적 생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출처 : 갈멜 산의 성모님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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